주정에 관대하면 술중독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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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삶의 향기를 돋구는 최상의 감미료인 술. 하지만 '술이 술을 부르는' 술의 중독성 생리 때문에 부작용도 심각하다. 특히 우리 나라는 취중 행동에 관대한데다 술을 강요하는 권주문화.집단 음주로 인해 치료받아야 할 음주문제를 방치.조장하기 쉽다.

광주세브란스 정신병원 남궁기 (南宮錡) 박사는 "우리나라 성인중 알콜 남용이 16%, 알코올 중독이 10%로 4명당 한명 꼴로 알콜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질병이 있다" 고 밝힌다.

남용은 술 마신 후 주정을 한다든지 폭력을 휘두르거나 음주 후 지각이나 결근, 의처증 등의 행동을 보이거나 간염 등 술을 마시면 안되는 몸의 질병이 있는데도 술을 마시는 경우. 이 상태를 지나 술을 안마시면 불안.초조해지고 땀이 나며 피로감.무력감.구역질 등 금단 (禁斷) 증상이 나타나면 중독으로 본다.

알콜중독은 히로뽕 중독 같은 '약물중독' 의 한 종류. 술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신체 내 마약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서울대의대 정신과 강웅구 (姜雄求) 교수는 "최근 알콜중독 치료제로 각광받는 날트렉손.아캄프록세이트 등의 약리작용도 신체 내 마약체계 작동을 방해해 술을 마셔도 무덤덤한 상태로 만드는 것" 이라고 설명한다.

울산의대 서울중앙병원 정신과 김헌수 (金憲秀) 교수는 "알콜남용이나 의존환자가 13%정도인 미국에선 음주문제를 치료받는 환자가 해마다 1백40만명정도" 라며 "음주문제는 온가족이 괴로움을 당하는 가족질병인데도 우리나라에선 치료받아야 할 환자를 환자로조차 생각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 지적한다.

알콜중독도 조기진단.치료가 최선책. 술은 자꾸 마시다 보면 술을 자꾸 부르게끔 뇌의 '생물학적 변화' 가 오는 '질병' 이므로 남용 단계에서부터 중독으로 진행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남용이나 중독에 이르는 술량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진단은 음주행태에 따라 진단한다.

알콜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외국에선 술주정.음주운전등 술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초래한 경우 가정 - 지역사회 - 병원간 연계가 잘돼 있어 강제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술마신 다음날 지각.결근은 예사로 봐 넘기고 술 주정도 '취중에 한 일' 로 지나쳐 병을 키우기 일쑤. 남궁박사는 "우리나라에선 음주폭행으로 입건된 경우에도 법원에서 강제치료 판결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 이라고 들려준다.

술꾼이라면 자신이 음주 문제를 알아보는 CAGE검사를 통해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면 일단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

물론 음주문제가 있다고 모두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 것은 아니나 특히 알콜중독은 유전성이 강한 병이므로 가족력이 있는 경우 조속히 전문가 검진을 받아야 한다.

현재 치료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잦은 과음은 심신을 병들게 하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음주량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우리사회가 알콜중독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선 술주정은 물론 과음후 지각.결근등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묻고 음주를 강요하지 않는 술문화 정착도 시급하다.

남궁박사는 "알콜중독으로 입원한 환자인데도 직장상사들이 '이사람은 술을 아주 좋아할 뿐 알콜중독자는 아니다' 라고 의사를 설득시키려 하는 경우도 흔하다" 고 말한다.

술문제의 심각성을 본인이 깨닫고 치료받게 하기 위해선 가족.친지는 ▶환자가 취중 일으킨 문제를 대신 해결하지 말고 ▶술이 깬 조용한 상황에서 치료를 권하며▶음주로 인한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즉시 치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알콜중독은 재발이 잦은 만성병이므로 치료시 인내심이 필요하다.

금주 (禁酒) 는 치료의 필수조건. 환자.보호자는 병원 치료와 함께 AA한국지부 (02 - 774 - 3797) 과 알콜중독환자 가족모임 한국지부 (02 - 752 - 1808) 의 도움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황세희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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