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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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KBS교향악단은 새로운 사령관의 작전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진격나팔 (관악기) 이 울리자 대포 (타악기) 의 엄호를 받으면서 보병부대 (현악기)가 적진을 향해 진격했다.

연습에서 땀을 많이 흘릴수록 실전에서 피를 덜 흘린다는 진리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나흘 동안의 연습량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올해 첫 정기연주회에서 상임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는 정열적이면서도 빈틈없는 지휘로,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을 관현악의 울창한 숲으로 안내했다.

서곡이 끝나고 협주곡이 시작되기전 소란을 피우면서 우르르 자리를 잡는 것이 체질화된 '지각 청중' 은 이날 로비에서 꼼짝없이 45분을 기다려야했다. 서곡과 협주곡이 프로그램 후반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관객의 '허' 를 찔렀다. 첫곡으로 연주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 는 관현악의 다채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4악장짜리의 방대한 작품. 신임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개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오디션곡' 이기도 하다.

특히 이날 곡중 독주를 맡은 악장 (바이올리니스트 김복수) 을 비롯해 트럼펫.플루트 수석의 활약이 돋보였다.

키타옌코 취임 이후 달라진 무대풍경이 하나 있다. 휴식 시간에도 무대에 나와 어려운 악구를 열심히 연습하는 단원들이 눈에 띤다는 것. 늘상 연주하는 스탠더드 레퍼토리였다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라벨의 '라 발스' 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격정 속에서도 자로 잰듯한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특히 관악 파트의 호흡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읽어내 흔들림 없는 음악의 건축물로 만들어내는 키타옌코의 지휘봉은 언제나 뜨거웠다. 겹겹이 쌓아올린 음들이 빚어내는 색채와 흐름은 항상 어디론가를 향해 꿈틀대는 힘을 갖고 있었다.

오랜만에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협연자로 출연,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복잡하게 얽힌 리듬의 실타래를 명쾌하게 풀어냈고 거장적인 풍모까지 느끼게 하는 타건력과 음악적 구성력, 관현악을 압도하는 다이내미즘으로 확고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 보였다.

KBS교향악단이 영도력있는 지도자를 맞이한 만큼 협연자의 유명세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내로라하는 장안의 음악팬들을 끌어들일만한 흡인력을 갖추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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