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온실가스 규제 덕분에 판매 급증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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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호 28면

기아자동차 포르테가 소형차의 불모지인 미국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올 4월에 뉴욕에서 열린 모터쇼에 소개된 기아 포르테.

미국은 소형차 불모지다. 1973년과 79년 1, 2차 오일쇼크 때 잠시 소형차 붐이 일었지만 잠시뿐이었다. 기름값이 내리자 미국인들은 여지 없이 중후장대한 차를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소형차를 내놓았던 메이커들만 닭 쫓던 개의 신세가 됐다.

미 대륙에 부는 소형차 열풍

그런데 요즘 미국에 소형차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전문가들은 3차 열풍이라고 부른다. 기아자동차의 포르테와 소울을 비롯해 일본 마쓰다의 마쓰다3 및 혼다의 시빅, 미국 포드의 포커스 등이 잘 팔려나갔다. 매체들도 탈 만한 소형차들을 선정해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번 소형차 열풍은 고유가에다 온실가스 규제 강화라는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여기에 신차 보조금도 한몫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오래돼 연비가 나쁜 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사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미국인들이 작은 차를 사들이자 미국 GM·포드, 일본 마쓰다는 내년 말까지 소형차 모델을 3개씩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3개 회사에서만 모두 9개의 새 모델이 나오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소형차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메이커들은 이전과는 달리 소형차에 고급 사양을 추가할 예정이다. ‘소형차는 안전하지 않고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미국인의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고급화는 소형차의 가격 매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

이번 3차 열풍을 계기로 소형차가 미국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을까?
GM과 포드 등은 1, 2차 때와는 달리 이번엔 미국인의 취향이 확실하게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예가 ‘미니 붐(Mini Boom)’이다. 독일 BMW가 생산한 미니 쿠퍼가 고유가 덕에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2007년 이후 해마다 30%씩 판매가 늘고 있다.

반론이 없지는 않다. 미국 자동차 컨설팅회사들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소형차를 보는 미국인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에릭 노블 카랩컨설팅 회장은 지난주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소형차 수요 조사를 의뢰받을 때마다 질문을 바꿔 소형차 구매의향을 물어보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없다’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3차 열풍도 일시적 바람에 그칠 수 있다. 기름값이 다시 내리고 신차 보고금도 사라지면 미국인들이 소형차 대신 대형 세단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사들일 가능성이 여전하다. 이렇게 되면 1, 2차 때처럼 막대한 돈을 들여 소형차를 개발한 메이커들이 다시 골탕 먹을 수 있다. 특히 소형차를 꾸준히 그리고 많이 생산해본 적이 거의 없는 미국 GM과 포드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소형차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또 판매상들은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제살 깎아 먹기식 할인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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