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 아테네 올림픽은 '여인천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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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아테네 올림픽은 여걸들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108년 만에 아테나 여신의 도시로 돌아온 근대 올림픽답게 '여성에 의한 올림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아나 앙겔로풀로스-다스칼라키(49) 아테네 올림픽조직위원장, 도라 바코야니(50) 아테네시장, 파니 팔리 페트라리아(51) 문화부 차관. 이들이 바로 올림포스의 여신을 연상시키는 여걸들이다. 이번 올림픽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 바로 이들이란 점에서 '여인 천하'라 할 만하다.

화살촉처럼 예리한 눈빛을 지닌 다스칼라키 위원장이 지혜의 여신 아테나라면 넉넉한 체격에 기품있는 미소를 겸비한 바코야니 시장은 결혼과 출산의 여신 헤라를 닮았다. 페트라리아 차관은 아르테미스에 비길까.

변호사 출신의 다스칼라키는 '느림의 미학' 속에 잠든 그리스인을 일깨워 올림픽 준비를 차질없이 이끈 지략가다. 최초의 여성 조직위원장이다. 1997년엔 올림픽 유치위원장 직을 맡아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보수파인 신민주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당시 사회당 정부가 조직위원장에는 다른 사람을 밀었다.

그러나 두 명의 전임 위원장이 '능력 부재'를 이유로 물러난 뒤 사회당 정부는 2000년 그를 다시 불렀다.

2002년 아테네 역사상 첫 여성시장인 바코야니는 고도 아테네를 재정비해 활기찬 분위기로 환생시킨 인물이다. 전 그리스 총리의 딸. 89년 언론인이었던 남편이 암살당한 뒤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정부의 안일한 테러 대책과 공무원들의 나태함을 비판하면서 보수진영의 간판으로 입지와 위상을 높였다. 남편을 테러로 잃은 그녀는 자신의 소망을 "오직 올림픽의 안전 개최"라고 말한다.

페트라리아 차관은 이번 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올림픽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들처럼 올림픽과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아나 베나티 그리스 국회의장도 최초의 여성 의장으로 그리스에서의 우먼파워를 실감케 한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인들은 이번 올림픽이 '여인들의 천하'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스 여성들 참 대단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중요한 자리는 모두 여자 차지"라는 기자의 말에 그리스의 올림픽 관계자들은 "아, 그러고 보니…"라며 무릎을 쳤다.

그리스 최대 일간지 '카티메리니'의 니코스 가바라스 기자는 "우리는 생각 못했다. 일리 있는 얘기"라고 했다.

여인들의 이런 맹활약은 우연일까. 아닌 것 같다. 유근길 그리스 한인회장은 "이곳은 장녀 상속의 전통이 있을 정도로 여권이 강하다. 과거 도시국가 전쟁 때부터 남자가 귀했고, 터키로부터 수백년간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억눌렸던 남자보다 여자의 권한이 커진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아테네=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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