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로니컬한 소리일는지 모르지만 지난주 보도된 '국새 (國璽)' 관련기사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여러개의 신문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새삼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느 한 신문도 완벽하게 '국새' 에 관한 독자의 정보욕구를 충족시켜 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수한 신문들의 기사를 샅샅이 읽고 나서야 비로소 '국새' 에 얽힌 사연과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국새' 기사는 행정자치부의 공식발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그 한계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국새' 를 새로 만들 예정이라는 기사는 이미 지난해 보도된 것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장황하게 기사화할 까닭이 없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관계당국의 발표문을 기사로 다룰 때 거기에는 대충 세가지 길이 있을 터이다.
첫째는 발표문을 거의 그대로 옮기는 것. 둘째는 발표문을 간추려 기사화하는 것. 셋째는 발표문을 중심으로 전후 사정을 취재해 새로운 기사로 꾸미는 것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 방법 가운데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는 구태여 지적할 나위도 없지 않을까 싶다.
발표문을 기사화하는 데 있어 금기 (禁忌) 는 그것을 그대로 옮기거나 발표문보다 내용이 열악한 기사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새' 에 관한 내용이 비록 예고기사로 보도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새롭게 제작된 '국새' 에 관한 이야기는 화젯거리로서도 충실하게 다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인감 (印鑑) 문화의 뿌리가 깊을 뿐더러 '도장' 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유별나다는 점을 경시할 이유는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라 도장인 '국새' 에 대해서는 그 관심도를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국새' 에서 '새 (璽)' 라는 한자는 예부터 '임금의 도장' 곧 '옥새 (玉璽)' 를 나타내는 글자다.
글자꼴 속에 옥 (玉) 이 들어 있는 것은 그것이 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도장은 하늘기운을 받아 땅을 누른다는 뜻까지 지닌다고 풀이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바뀌면 맨 먼저 옥새를 챙기거나 새로운 옥새를 만들었던 게 고사 (故事) 이기도 했다.
지난해 '국민의 정부' 가 출범한 것과 정부수립 50주년을 기념해 '국새' 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는 것은 사실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난 62년에 제작된 '국새' 가 해마다 1만6천여회 사용돼 마모가 심한 데 따른 교체라고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사용해 온 '국새' 는 몇가지 결함을 지니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로 서체가 한자의 전서체를 모방한 것으로 한글의 독창성 내지는 주체성을 상실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은 (銀) 으로 만들어져 나라 도장으로서의 기품을 잃었다는 점, 셋째는 도장의 밑바닥 크기가 가로 세로 7㎝로 동양의 다른 나라에 비해 왜소할 뿐더러 손잡이 부분도 장수 (長壽) 를 상징하는 거북모양으로 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새로 제작된 '국새' 는 이런 문제점을 말끔히 해결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서체에서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등의 서체를 참조해 민족의 창조성을 되살렸다는 것이고, 손잡이도 국운 (國運) 의 비상 (飛翔) 을 기원하는 뜻으로 봉황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봉황은 우리 민족의 상징같은 것이라고도 일컬어진다.
게다가 '국새' 의 인면 (印面) 도 한변의 길이를 10.1㎝로 크게 했는데 이것은 조선왕조의 국새 크기가 평균 10㎝였고, 일본의 국새도 역시 10㎝라는 점을 참고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국새의 재질은 금.은.구리를 합금한 18금으로 무게 2.15㎏이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에서 특수제작했다고 한다.
한데 제작에 얽힌 숨은 이야기라든가, 국새제작자문위원회 (위원장 鄭良謨) 관계자,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여원구 (呂元九) 한국전각회장과 김영원 (金永元) 홍익대교수의 인터뷰 등을 실은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
이규행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