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불구속기소 안팎]편파처리 시비일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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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비리 혐의로 국회에 체포동의서가 접수된 현역 의원 9명에 대해 검찰이 29일 일괄 불구속기소키로 함으로써 검찰권이 또다시 정치권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검찰의 논리는 이렇다.

"한나라당 김윤환 (金潤煥) 의원의 공천헌금 30억원 수수사건에 대해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달 말로 공소시효가 만료돼 불구속한다. 그 경우 金의원보다 금품수수 액수가 적은 의원들은 형평을 고려할 때 함께 불구속기소해야 한다. "

그러나 그간 진행과정을 보면 검찰의 이런 결정 자체가 자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야 총무들은 지난 25일 정국 정상화를 위한 합의문을 내놓았다.

이 방안에는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는다" 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야 총무들은 또 이면으로 "여당이 검찰 쪽에 의원들의 불구속 처리를 요청한다" 는 부분까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에 대해 22일 박상천 법무부장관이 국회에 체포동의안 신속 처리를 공식 요청하고 26일엔 김태정 검찰총장이 국회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는 등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이번 불구속 결정으로 비리 의혹을 받던 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더욱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불구속기소됐기 때문에 재판은 무한정 연기될 수도 있다.

물론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국회가 개회 중이면 국회로부터 다시 체포동의를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계속 임시국회를 열어가며 비리 의원들을 감싸온 여야의 전력을 고려하면 체포동의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검찰의 정치인 사정 (司正) 은 그동안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는 게 법치국가에서의 합당한 절차다.

게다가 이번에 무더기 불구속 처리된 의원들 가운데는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는, 죄질이 나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치적 협상을 명분으로 다 빠져나가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은 손도 못대면서 중하위 공직자들에 대한 사정을 무슨 명분으로 하느냐" 고 허탈해 했다.

검찰의 이번 결정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물론 타깃은 정치권이겠지만 검찰도 비켜가지는 못한다.

게다가 최근 심재륜 대구고검장 항명 사태까지 겹치면서 검찰 내부는 더 어수선한 상황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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