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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발전과 참된 주인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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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대학을 기업과 단순히 비교하긴 어렵다 해도, 대학 사회에 경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주인의식’이 퍼져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국·공립 대학에는 대학을 설립한 국가와 공공기관이, 사립대학에는 학교법인이 있다. 그럼에도 교수·교직원·학생들이 각자 대학의 주인이며, 주인의 권리가 그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교수들은 교수가 대학의 주인이니 총장 임용에 관여해야 한다고 한다. 나아가 교직원들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총장 선출에 일정한 지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대학 구성원들이 학교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사학법 개정에 반영돼 대학평의원회가 만들어졌고, 교수·교직원·학생 대표는 이 기구를 통해 대학 운영에 관여하게 됐다.

특히 학생들은 학생회나 자유게시판을 통해 곧잘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등록금 수입이 학교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니 학생이 주인이라는 논리인 것 같다.

학교법인의 이사장을 교주(校主)라고 부른 시절이 있었던 걸 보면, 과거에는 대학 구성원 사이에 이처럼 혼선이 컸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일부 사학 때문에 반(反)학교법인 정서가 강해지면서 구성원들이 서로 학교 운영의 주체 또는 주인임을 자처하고 나서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대학이 열린 공간이라고 한들 모두가 주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영 주체가 확실히 서지 않으면 학교도 튼실하게 발전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학교법인과,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 학생 간의 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역할을 정립해야 소모적 분쟁과 갈등을 줄이고,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가는 길도 단축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학의 의사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대학의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기업에 견준다면 학교법인이 주주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이사장은 주주 대표 격이고, 학교법인 이사진은 기업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와 같다. 이렇게 보면 대학의 의사결정권은 학교법인에서 비롯되고, 운영 주체는 학교법인의 이사회로 보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교수와 교직원들은 어쨌건 대학을 직장으로 택한 사람들이다. 학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대학의 특수성 때문에 기업의 종업원과는 다른 지위에 있고 그들의 의사가 존중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교수와 교직원이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될 수는 없다.

학생은 어떨까. 등록금 수입이 학교 운영경비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현실 탓에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아져 있으나, 냉철히 말하면 학생은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다. 피교육자로서 그에 합당한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경계를 넘는 주장이나, 지나치게 강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수학 능력과 장래 선택할 진로를 감안해 스스로 대학을 선택했다. 등록금은 그 선택에 대한 비용으로 볼 수 있다.

필자가 지난 한 해 동안 학교법인 이사장 역할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대학은 기업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학이 수익을 내고자 하는 기업은 아니다. 학문의 발전과 이를 위한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특성을 가진 기관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운영 면에서는 대학도 기업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 경영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대학에 경영 원리를 도입해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세계를 누비듯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는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하는 날이 한층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교수와 교직원·학생·법인 등 대학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되새기고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성숙해야 한다. 애교심을 바탕으로 한 ‘주인의식’은 좋지만, 의무와 역할보다 과도하게 권리를 내세우는 일각의 모습이 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의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모두들 깊이 생각해볼 과제가 아닐까.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