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해탄의 漁具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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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한.일어업협정은 양국 어업관계를 규율할 두가지 대표적인 규범을 담고 있다.

첫째는 상대방 경제수역에서의 상호입어 (入漁)에 관한 것으로 이는 전통적으로 두나라가 공유.개발해 온 어장에 대한 상호의존관계를 일시에 청산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둘째는 경제수역경계에 대한 쌍방의 주장이 경합하는 동해와 제주도 남부수역에 일정한 범위의 이른바 중간수역을 설정하고 그 수역에서는 두 나라 국민이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각각 국내법에 따라 어업을 계속하게 하자는 것이다.

또 어업활동규칙을 제정하고 그것을 위반한 선원에 대한 단속권은 경제수역에서는 연안국주의, 중간수역에서는 선적국 (기국) 주의에 의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어업협정은 두 나라 어업관계에 관한 기본적 합의인데 그것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실무협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협정의 운영이 현재와 같이 표류상태에 처하게 됐다.

즉 일본의 경제수역에 한국 어선이 입어하는 구체적 조건을 놓고 대형 선망을 비롯한 10개 업종에 대해서는 합의했으나 대게.가자미를 어획하는 자망어업과 장어를 어획하는 통발어업에 대해선 그 어법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일본의 강경입장으로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일본의 태도는 전적으로 일본 수산업계의 반발에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으로서는 올해와 내년에 각각 할당받은 대게 허용량을 어획하기 위해 당장 다른 어구 (漁具) 로 대체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되며 장어잡이는 통발 이외엔 마땅한 어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양보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먼저 한국은 이 문제의 해결없이는 타업종에 대한 합의도 의미가 없다는 일괄타결방식을 고수하는 반면 일본은 쟁점이 되는 두 업종은 뒤로 미루고 합의된 업종은 즉시 상호 입어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1월 22일을 기해 상대방 경제수역으로부터의 어선 철수가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여러 척의 한국 어선이 일본에 나포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러한 갈등현상은 세계에서 생선을 가장 선호하는 두 나라 국민간의 문제이고 어장과 자원상태에 비해 과도하게 큰 어업세력으로 인해 발생한 사태라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 않다.

그러면 두 나라가 일전을 불사하는 태세로 임해야 할만큼 이번 문제가 심각한가.

여기에서 우선 일본의 성의있는 문제해결 노력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협정체결시의 약속을 시작부터 뒤집는 일본의 행위가 국제신의에 반하고 인근 국가로서 국내적 문제를 상대방 체약국에 전가하는 행위는 선린우호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도 당면한 어업문제를 해결하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내부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산업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어업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책임어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새 국제법 질서를 수용하고 그 규범에 따라 어업활동을 하게 하는 것은 유엔 해양법협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사항이다.

이제 더 이상 일본 연안수역이 우리의 황금어장일 수 없고 지난 22일부터는 어업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 공해가 한.일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우리의 경제수역을 더 소중히 가꾸고 자원을 조성해 지속적인 어업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다져야 한다.

둘째는 준법어업의 절대적 이행이다.

불법어업이 횡행하는 우리 수산업계의 풍토를 쇄신하기 위한 정부와 업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해상 치안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셋째, 강력하고 효과적인 어업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정부의 합당한 지원정책과 업계의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통해 구조조정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의 기반이 더욱 건실해지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한 영세 어업인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적정 수준의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협정 이행에 따른 구체적인 분쟁해결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타국의 영해를 침범해 행하는 어로행위는 엄연한 범법행위다.

그러나 타국 경제수역 내에서의 범칙 어로행위에 대해서는 체형 (體刑) 금지원칙이 해양법상 확립돼 있다.

따라서 보증기금을 설치.운용함으로써 선의의 경미한 범칙어업을 행한 선원이 용이하게 방면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최종화 부경대교수.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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