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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외국인에 경영권 넘어갈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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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상장 제조업체 ㈜메디슨의 재무담당 최설중 대리는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메디슨 주식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의 명단과 투자성향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음파진단기 등 첨단 의료장비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축적된 기술에 비하면 현재의 기업가치가 낮다고 평가돼 외국인 매수가 집중된 종목 중 하나다.

20일 현재 메디슨의 외국인 지분율은 59.67%.하지만 국내 대주주 지분이 5%대에 불과하다. 만약 외국인들이 경영권에 야심을 품고 연합전선을 편다면 승부는 불문가지인 상황이다.

崔대리 뿐 아니라 재무담당의 과장.부장.이사를 포함해 사장까지 여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메디슨의 최대 고민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정체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다. 고심끝에 최근 소폭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청약에 응한 외국인은 2백60여명. 회사는 이들에게 때로는 국제전화로, 때로는 국내로 초청해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때 우호적 세력으로 가세해 줄 것을 설득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들의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 (M&A) 을 우려해 전전긍긍하는 기업들은 메디슨 뿐만이 아니다.

증권거래소가 전체 상장사를 대상으로 외국인 지분율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일 현재 외국인 지분율이 국내 대주주 지분율을 크게 초과하는 상장사는 전체의 5.6%에 달하는 42개.

문제는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삼성전자.포항제철.SK텔레콤 등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우량기업들이라는 점이다. 해당 기업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우호적인 지분을 늘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만일의 사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털어 놓고 있다.

◇ 경영권 방어노력 백태 =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국내외에 우호적인 주주세력을 늘리는 것이다. 메디슨은 최근 3천만달러어치의 해외전환사채 (주식전환시 11% 지분) 를 발행해 미국계 특정 인수희망 기관에 전액 매각하는 대신 이면계약을 했다. 만일의 경우 국내 대주주와 힘을 모아 경영권 탈취에 맞선다는 조건이다.

영원무역은 외국인들이 만일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다면 그 목적은 영업호조를 보이는 방글라데시 현지 투자법인을 인수하는 데 있다는 분석아래 현지법인에 대한 지분을 관계회사들에 대거 매각하는 방법으로 분산시켰다.

또 만일에 대비해 10% 지분에 해당하는 43만주의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해 회사가 모두 되사들였다.

아남반도체는 주로 미국계 투자기관을 설득, 우호적인 외국인지분율을 20% 가량 확보했다. 자사주식을 사들이거나 유상증자를 통해 계열사 및 회사관계자들에게 배정하는 방법으로 외국인들의 손길을 방지하는 방법도 동원된다.

현대전자는 지난달 14만여주의 유상증자 실권주를 현대상선 등에 배정했으며 지난해 11월 이후로만 신한은행 등 15개사가 유상증자 물량 일부를 특수관계인에게 매각했다.

특히 상당수 기업들은 경영권보호의 방법으로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어 지난해 이후 자사주 매입 상장사수가 무려 1백39개에 달하고 있다.

◇ 기업들의 고민과 향후 전망 = 우선 적의를 지닌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포항제철 금융팀의 이동희 부장은 "대부분 외국 투자자들이 차명 또는 간접투자 방식을 통하고 있어 실체 파악이 쉽지 않을 뿐더러 설령 알아내더라도 언제 어떻게 투자목적이 바뀔지 몰라 고민" 이라고 털어놨다.

포철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설득해 보유물량을 가급적 늘려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계열 연구소인 포스리에 적대적 M&A 대비책에 대한 용역을 맡겨 놓고 있는 상태.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 상향조치에 따라 외국인들의 국내 우량 기업 지분율은 앞으로 더욱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타이거펀드 등 외국인 연합세력의 SK텔레콤 경영권 침해 (사외이사 강제임명) 등과 같은 사례가 늘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전자 재무팀의 김명건과장은 "최근 코리아펀드 등 일부 외국투자가들이 경영권을 넘보는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고 밝히며 "국내 기관투자가 등과 힘을 합치는 방법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없다" 고 말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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