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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새 밀레니엄과 과학기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연초부터 밀레니엄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 1천년간, 또는 20세기 과학기술발전에 대한 평가와 21세기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예측, 심지어는 앞으로 1천년간 나타날 과학기술의 모습을 그려보는 황당무계한 상상력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미 새해벽두부터 컴퓨터 연도 표기 혼동으로 인한 전산시스템 상의 오류인 밀레니엄 버그, 즉 Y2K의 문제는 공공기관.산업체.대학 등의 전산 관련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더구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한 지구 종말론 (終末論) 적인 해석은 그것을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올해 7월이 다가오면 올수록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 도처에서 21세기를 겨냥한 밀레니엄 비즈니스가 꿈틀거리고 있고, 밀레니엄 상표가 등장하고 있으며, 신문.방송 매체에서도 수많은 특집 형태로 이를 다루고 있다.

'딥 임팩트' 와 같은 개봉 영화가 혜성에 의한 지구 종말에 관한 주제를 다룬 것도 이런 밀레니엄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 외에도 문명 진단에 관한 많은 서적들이 밀레니엄 분위기에 편승해 최근 서점가를 뒤덮고 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 점점 심해질 것이며, 필경 2001년 초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우선 세기말은 우리에게 바로 1백년 전이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일어난 일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지난 세기말을 전후, 등장해 20세기 내내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발명.발견들은 21세기를 맞는 우리에게 좋은 화두 (話頭) 를 마련해준다.

평소에는 생소했던 주제인 마르코니의 무선전신, 막스 플랑크의 양자론, 라이트 형제의 항공기, 뢴트겐의 X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관한 이야기가 최근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에 대한 회고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세기말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복제 (複製) 기술을 비롯한 생명과학, 뇌과학, 첨단소재, 환경 및 에너지 관련기술, 초음속 비행기를 비롯한 수송수단의 혁명, 물리학 분야에서의 통일이론 완성 등은 21세기에 나타날 새로운 과학기술의 후보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18개월마다 컴퓨터 처리 속도와 집적도가 두배씩 증가한다는 소위 '고든 무어의 법칙' 은 현재도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통신혁명 및 컴퓨터의 발전이 가져올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더욱 실감케 하고 있다.

과학기술 진보에 대한 희망과 아울러 인류 문명의 발전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진단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즉 외계의 고등 생명체가 지구를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문명이 어느 정도 발전하게 되면 생명체들이 서로 파멸적인 핵전쟁을 함으로써 멸망하기 때문이라든지, 공룡의 멸종 사례에서 보듯 소행성.혜성의 충돌로 인류가 멸종하는 지구 최후의 날이 다가온다든지, 지구온난화나 오존층 파괴와 같은 전지구적 생태계의 위기로 말미암아 지구가 맞이하게 될 대재앙에 관한 지적은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예들이다.

밀레니엄 변화 시기에는 비단 과학기술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동반할 것임에 틀림없는 데도 유독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래예측적인 진단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분야가 다른 분야에 비해 납득할만한 예측이 가능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근거 없는 미래에 대한 진단이 난무하는 현실은 좀 더 우리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밀레니엄 과학 저널리즘 가운데는 그것이 아무리 가상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허무맹랑한 형태로 보도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며, 21세기에 부상할 첨단과학이라는 기치 아래 각종 홍보전까지 이에 가세하고 있는 상태다.

예를 들어 수많은 연구비가 투자되는 핵융합과 같은 거대과학 분야에서는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밀레니엄 과학 보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외에도 세기말에는 지구 종말론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출몰하면서 사람들이 예언서나 점성술에서 보이는 신비적 분위기에 빠져 결국은 우리사회에 비과학적인 태도가 횡행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커지고 있다.

세기말을 슬기롭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밀레니엄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과학사

◇ 필자약력

▶40세▶서울대 물리학과▶독일 함부르크대 과학사 박사▶미국 버클리대 박사 후 연구원▶포항공대 과학사교수 (현) ▶저서 : '20세기 과학의 쟁점' '과학사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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