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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밀턴 '아레오파지티카'번역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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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혜에 대한 억압은 지혜의 권위를 높여줄 뿐이다.' 인류지성사가 가르쳐준 준엄한 진리를 지배권력은 자칫 망각한다.

중국의 분서갱유 (焚書坑儒) 를 들지 않아도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의 늘어나는 금서 (禁書) 와 비공식 베스트셀러 목록이 교묘하게 일치했던 '기현상' 은 그 가까운 증거다.

17세기 영국 서사시 '실락원 (失樂園)' 의 시인 존 밀턴은 일찍이 언론출판의 자유를 피력한 바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과 함께 언론 연구의 고전인 '아레오파지티카' (나남.1만원)가 바로 그것. 전 한국언론학회장 임상원 고려대 교수가 국내 처음으로 번역 출간했다.

'아레오파지티카' 란 '전쟁의 신' 의 그리스어 '아레스' 와 '지역' 이라는 '파고스' 의 합성어로, 말로써 다투는 곳 즉 법정을 의미하는 아레오파지티쿠스에서 파생한 말. 이 저술에는 밀턴 개인의 출판 관련 배경이 있다.

1644년 초 밀턴은 교회와 국가가 결혼과 이혼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한 '이혼의 교의와 질서' 를 간행했지만 의회로부터 불태워져야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에 밀턴은 출판의 자유를 주창하는 내용으로 영국의회에서의 연설문 '아레오파지티카' 를 집필했다. 밀턴은 나쁜 책이라 할지라도 현명한 독자는 많은 것을 발견한다며 모든 독서는 이롭다는 논증을 제기한다. 또 악의 전파를 막겠다는 출판허가제는 마치 공원 문을 닫고 공원 안의 모든 까마귀를 가두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개탄한다.

밀턴은 진실과 허위가 공개적으로 대결할 때에만 진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표현의 자유는 진리 발견의 전제라는 언론자유의 전통적 논리다.

번역서에는 '아레오파지티카' 전문과 해제 성격을 갖는 역자의 연구논문이 함께 실렸다. 역자는 4가지 판본의 문장부호까지 치밀하게 대조하며 꼼꼼히 비교해 자상한 주석을 붙였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사례들로 인해 다소 난해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책 읽기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맛보게 한 역자의 배려가 돋보인다.

작지만 21세기를 내다보며 17세기 변혁기의 고전 목록 하나를 추가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고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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