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 정국 청문회 '반쪽'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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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종필 (金鍾泌) 총리의 '국회 529호실 사태' 에 대한 유감표시를 계기로 풀릴 듯했던 여야관계가 경제청문회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주춤거리고 있다.

정치권의 해빙기류는 '절반의 화해' 에 불과했던 것일까. 한나라당이 청문회 특위위원의 여야 동수.정책청문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사실상 불참방침을 통보하자 여당은 18일부터 단독 청문회를 강행하기로 했다.

현재로선 '반쪽 청문회' 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 경우 야당은 불참상태에서 여당 청문회에 물타기 성명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여권이 과거정권의 비리를 들춰내는 폭로전에 나선다면 야당이 방어차원에서 중도에 참여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여권이 '반쪽 청문회' 가 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청문회를 강행하려는 것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0% 이상이 원하는 것으로 드러난 대형 이슈다.

과거정권의 경제위기 초래 원인규명에 맞춰져 있어 집권세력의 도덕적 기반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도 된다.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집권 1년이 다가오면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만이 서서히 현정권쪽으로 옮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권세력으로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적 '통과의례' 가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문제는 일방통행식의 여당 단독청문회로는 국민적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야당의 참여를 유인하기 위한 다양한 전술이 검토되고 있다.

18일부터 1주일간 기관 보고가 진행되는 중에도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의 증인채택 여부, 증언방식 등이 협상카드로 동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파탄의 책임을 명백히 규명하지 못할 경우 역공을 당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불법.비리사실 폭로 등 '결정타' 가 절실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YS가 '치명상' 을 입을 경우 부산.경남지역의 감정악화, 국민회의와 민주계의 민주대연합구도 무산이라는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소지도 있다.

따라서 공세의 초점은 YS에 맞추되 실제 타격은 측근 몇 사람에게 입히는 고차원적 전략이 구사될 가능성도 있다.

여권은 경제청문회가 의도대로 진행된다면 정계개편의 명분과 분위기가 성숙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정권과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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