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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법관 인사청문회 깊이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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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 인사청문특위가 어제 김영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그의 자질 등에 대한 검증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청문특위 소속 의원들의 질문 상당수가 정치적인 것이거나 수박 겉핥기식이어서 실망스럽다.

사실 이번 청문회는 법조계뿐 아니라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김 후보가 사법사상 첫 여성 대법관 후보인 데다 최근 외부 영향력으로 인한 사법부 위기론마저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의 질문은 김 후보가 사전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나 언론 보도 내용 등을 토대로 한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특히 일부 의원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 등 재판 업무와 무관한 정치적 질문을 쏟아내거나 진보 성향 법관의 발탁 필요성을 역설했다니 무엇을 위한 청문회였는지 묻고 싶다.

이번 청문회에서 대법관 임명제청 과정에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작용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법권 독립에 대한 중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법관들이 시류에 영합하는 재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들은 이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김 후보 등을 상대로 다그치기만 했다.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대법관 후보의 자질.도덕성.전문성 등을 철저히 검증함으로써 대통령이 사법부 구성에 전횡할 수 없도록 만든 장치다. 대법관의 변화는 그 나라 법체계의 변화라고 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사 청문회가 통과의례나 요식행위여서는 안 된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까지 145명의 연방대법관 지명자 가운데 20%인 28명이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 실패했다. 당사자의 판례, 심지어 강연 내용까지 철저하게 검증받는다.

사법부는 체제의 마지막 수호자다. 그런 만큼 최고 법원 구성원에 대한 청문회도 그에 걸맞게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언제쯤 청문회다운 청문회를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