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과거 잘못 되풀이 않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진도 7.9의 강진 (强震) 이 일본 간토 (關東) 지방을 덮쳤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집집마다 켜 놓은 취사용 화로가 대화재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이날 밤 기온이 섭씨 46도까지 올라갔다.

불은 3일 오후에야 꺼졌다.

여진 (餘震) 이 9백36회나 계속됐으며, 해일 (海溢) 이 밀어닥쳤다.

특히 일본의 심장부인 게이힌 (京濱) 공업지대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인명피해도 엄청났다.

사망 9만1천3백44명.행방불명 1만3천2백75명.부상 5만2천74명을 기록했다.

건물피해는 전소 (全燒) 38만1천90채.완파 8만3천8백19채.반파 9만1천2백32채 등 추정 피해액이 55억엔이나 됐다.

1922년도 일본 정부의 일반회계예산이 14억7천만엔이었음을 고려할 때 피해 정도를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시대적 전환기에 있었다.

대내적으로 다이쇼 (大正) 데모크라시의 고양 (高揚)에 따른 민중운동의 조직화와 전후 경제공황으로 사회적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대외적으론 베르사유 - 워싱턴체제하에서 미.영과 대립, 시베리아 출병 (出兵) 실패, 조선.중국에서 반일 (反日) 민족운동의 격화로 국제적 고립화가 심해지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간토대지진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대재앙이었다.

일본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 는 소문이 돌자 광분 (狂奔) 한 주민들은 조선인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했다.

경찰.군대도 이에 가담했다.

이때 저질러진 '조선인 사냥' 으로 희생된 조선인은 6천4백15명에 달한다.

그러나 그후 진상규명이나 책임추궁 없이 사건은 잊혀져 갔다.

일본 지바 (千葉) 현 야치요 (八千代) 시의 한 마을 주민들은 지난 78년부터 해마다 간토대지진 당시 현지에서 학살당한 조선인 희생자 위령제 (慰靈祭) 를 지내고 있다.

지난해엔 유골 6구 (具) 를 발굴해 사찰에 안치했으며, 올해는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교훈을 후손에 전하기 위한 것" 이라고 설명한다.

한.일관계가 불행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솔직한 시인과 참회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야치요시 주민들이 벌이는 과거 잘못 되풀이 않기 운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