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DJ-5대그룹 합의 1년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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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부터 꼭 1년전인 98년 1월 13일 현대.삼성.LG.SK 등 5대 그룹 회장들 (김우중 대우회장은 해외출장) 은 당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와 만나 재무구조 개선.기업경영투명성 제고 등 5개항에 합의했다.

새 정부는 이를 기초로 부채비율 축소.상호지급보증 해소.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등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였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지난 1년의 성과와 문제점.과제 등을 집중 점검해본다.

지난 1년은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에 엄청난 메스가 가해진 한해였다.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마찰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가 더욱 튼실해지는 계기가 됐다.

일례로 5대 그룹의 부채비율이 97년말 4백38%에 달했지만 98년말에는 3백17.1%로 줄었고, 올해말에는 2백%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5대그룹 계열사도 지난해 19개사가 줄었으며, 올해까지 절반에 가까운 1백30여개사가 정리된다.

이같은 성과의 시초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의 외환위기로 급박하게 돌아가던 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 정부와 5대 그룹은 당시 5개항에 합의했다.

사실 5개 합의안은 그전에도 누차 강조돼 온 것이었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새 정부가 강한 실천 의지를 갖고 밀어붙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金대통령은 재벌과 금융기관을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 고 거듭 강조해왔다.

특히 5대 그룹이 핵심 개혁 대상이었다.

5대 그룹도 외환위기가 한보.기아 등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여느 때보다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개혁의 분위기는 조성돼 있었다.

그 뒤 새 정부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과감한 개혁 카드로 5대 그룹을 압박했다.

5대 그룹간 빅딜이 그랬고, 계열사 평균 부채비율을 99년말까지 2백%로 낮추는 것이나 계열사내 다른 업종간 상호지급보증을 98년말까지 전액 해소하라는 주문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5대 그룹을 대상으로 두차례에 걸쳐 부당 내부거래를 조사해 9백1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압박을 가했고, 올해부터는 계좌추적권을 갖고 대기업 경영을 감시하게 된다.

개혁의 강도가 워낙 강하고 빠르다보니 반발과 혼선도 적지 않았다.

'빅딜' 얘기가 나왔을 때도 5대 그룹은 물론 정부내에서조차 현실성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산고 (産苦)끝에 지난해말 반도체.석유화학 등 7개 업종 빅딜이 성사됐고 철강.유화단지.개인용휴대통신 (PCS) 등에서 추가 빅딜이 논의되고 있다.

부채비율 2백%도 처음에는 황당한 얘기처럼 들렸지만, 결국 5대 그룹은 올해말까지 2백%로 낮춘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외자를 유치하는 것은 물론 5대 그룹별로 3~5개씩 핵심업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나머지 1백30여개 계열사를 정리할 방침이다.

정.재계가 노력한 결과 대외신인도가 올라가면서 1년만에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와 무디스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투자적격 수준으로 상향조정할 움직임이다.

이같은 회복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이제 실천만이 남았다는 게 '개혁 2년' 을 맞는 정부와 재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고현곤.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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