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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법조비리의 원인과 대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 수임비리사건은 한국 법조계의 고질적 관행인 전관 예우와 법조브로커의 합작품이다.

사건알선자의 규모와 범위에 있어 재작년 불거진 의정부 법조비리사건을 능가할 뿐 그 비리수법에 있어선 동일하다는 점에서 의정부판 (版) 법조비리가 전국적 현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전국 변호사 평균 사건수임 건수가 1년 70건 내외임을 고려할 때 도대체 변호사 한 사람이 1년에 2백건 이상을 수임한다는 것 자체가 사건처리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불성실 변론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과다수임 상황에서 의뢰인에 대한 사건진행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사건의뢰인의 변호사와의 수시면담권과 의뢰인에 대한 사건진행 설명은 국민에 대한 양질 (良質) 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을 떠나, 의뢰인의 권리이자 변호사의 의무다.

문제는 李변호사가 1년에 3백건이 넘는 형사사건을 수임했었으면서도 이른바 성공률이 언론보도대로 90%선에 이르렀다면 경험칙 (經驗則)에 비춰 볼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서 李변호사의 로비활동이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법치주의 (法治主義) 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문제라 하겠다.

이번 사건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따라서 검찰수사에서는 이 점이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형사사건 대부분 (80% 이상) 은 자백사건으로서 법리 논쟁이 아닌 양형 (量刑)에 변론의 초점이 모아진다.

양형에 관한 법관의 재량이 절대적인 만큼 여기에 바로 전관예우 (前官禮遇) 라는 악령이 스며들 소지가 있다.

검찰의 기소유예처분 및 약식기소절차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보석허가 및 양형 등에 대한 통일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 일반인들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고인 스스로 자신의 형량을 예측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의 생명인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은 사법과정에서도 당연히 존중돼야 할 것이다.

이와 아울러 전관예우의 폐해를 제거하고 브로커를 통한 사건수임을 근절하기 위해 이웃 일본에서처럼 모든 형사사건을 원칙적으로 국선 (國選) 변호사건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원하는 변호사의 신청을 받아 법원별로 국선변호인 명부를 작성해 명부순으로 사건을 수임시키는 것이며 이때 변호사에게는 검사에 대응하는 사법기관의 일부라는 투철한 사명의식이 요구된다.

다만 피고인이나 그 가족이 원하는 경우에는 사선 (私選)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되 그 선임시기를 가능한 한 기소 이후로 해 수사단계에서의 브로커 개입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작년 변호사법 개정안에서 삭제됐던 판사.검사 등의 변호사 개업시 일정기간 형사사건 수임제한 규정을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종전 헌재 (憲裁)에서 위헌결정이 난 직전 근무지에서의 개업 자체를 제한하는 규정과는 달리 개업 직전의 근무지가 속하는 관할 지역의 형사사건만을 개업한 날로부터 2년 (아니면 1년) 간 수임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한 기본권 제한의 수단으로 평등권이나 직업선택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 대전 법조비리사건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따가움을 넘어 법조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우려할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검찰관련 인사가 많이 개입됐다는 사실에서, 시민단체와 많은 국민들이 또 다시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검찰은 선별적.차별적인 검찰권 행사로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남겨서는 아니되리라고 본다.

반면 검찰은 무고하게 비장부 명단에 오른 인사들에 대한 옥석을 가려내는 냉철함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법조인이 그 직분에 상응한 존경의 대상이기보다 국민으로부터 불신의 표상이 된 것은 추상적인 법문을 방패로 해 목전의 현상에 집착한 나머지 부정과 불의의 배격이라는 보다 큰 정의, 즉 공익적 활동의 소홀에 원인이 있지 않았는가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늘 그래왔듯이 지금도 권력남용에 대한 비판과 견제 및 법의 이념 구현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석연 변호사.경실련상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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