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황장엽씨의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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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에 관한 황장엽 (黃長燁) 씨의 말이나 글을 대할 때마다 인식론적인 갈등을 느낀다.

그는 북한체제의 사상적 버팀목인 주체사상 이론의 '대부' 로 김일성 (金日成) 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지도층의 한 사람이었다.

2년전 그가 홀연히 남한으로 망명해 왔을 때 우리는 당연히 그에게서 북한의 내부사정과 대남 (對南) 전략에 관한 정보의 노다지를 기대했었다.

회의 (懷疑) 도 없지 않았다.

黃씨는 자신의 망명동기를 "우리 민족을 (전쟁의) 불행에서 구하는 문제를 협의하고 싶은 심정에서" (97년 2월 12일 망명에 관한 진술서) 라고 설명했지만 김일성 사망후 그에 대한 김정일 (金正日) 의 푸대접으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킨 것도 망명동기의 하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에 대한 사원 (私怨) 이 그의 등을 남으로 떼밀었다면 북한에 관한 그의 증언은 객관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남한생활 2년. 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남에서 북을 관찰했다.

그것은 북한에 관한한 숲을 보는 데 필요한 거리였을 것이다.

남한에서의 사색 (思索) 은 이 주체사상의 대가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북한 인식은 반 (反) 김정일로 더욱 굳어진 것 같다.

이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지난 11일 중앙일보가 단독으로 입수해 3개 면에 걸쳐 소개한 그의 '평화통일전략' 이란 긴 논문의 논조다.

2년전 黃씨는 북한이 지금 경제적으로 난관을 겪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잘 단결돼 있어 붕괴될 위험은 없다고 단정했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북한체제 붕괴가 마지막 단계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그가 보기에 식량난으로 식량 배급제가 무너지고 주민들이 식량을 팔고 사고 다른 물건과 바꾸는 시장이 날로 확대되는 현실을 수령절대주의 독재의 일각이 허물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식량난으로 95년께부터 매년 1백만명의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면 지금쯤 북한의 인구는 2천2백50만명에서 1천8백50만명 정도로 크게 줄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철저히 통제된 사회라고 해도 5명에 1명이 굶어죽는 사회가 어떻게 지탱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는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 이유가 특이하다.

그에겐 식량원조가 통일전략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식량원조는 북한 인민들을 사상적으로 각성시켜 통치자들의 허위선전과 기만책동에서 벗어나 남한 동포들과의 통일결단을 요구해 용감히 궐기토록 추동 (推動) 하는 데서 결정적 의의를 가진다. "

북한 동포들은 자신들이 받는 식량이 남한 동포들이 보낸 것임을 안다면 김정일 정권의 허위와 기만에 분개할 것이고, 그 결과 김정일 독재정권의 대중적 기반은 송두리째 무너질 것이라는 黃씨의 말은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5명에 1명이 굶어죽어도 통치체제가 유지되는 사회의 주민들에게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는 식량원조를 통일의 수단, 더 구체적으로는 김정일체제 타도의 수단으로 이용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김대중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도 북한의 김정일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그들의 체제를 전복할 목적으로 보내는 "독약이 든 밥그릇' 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북한 죽이기의 수단인 햇볕정책에 호응하겠는가.

김정일 정권의 계급적 기초와 수령절대주의 이념이 달라지지 않는 한 무력통일의 기본노선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경고는 우리의 안보의식을 추스르는 계기는 된다.

수령절대주의가 건재하는 한 개혁.개방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견해도 새겨들을 만하다.

그러나 黃씨는 너무 단단한 냉전사고의 틀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는 통일보다 평화정착이 우선이어야 하고, 그래서 햇볕정책은 북한을 와해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원해 남북한이 더불어 살기 위한 정책이어야 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칠순 망명객의 변신의 한계인가.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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