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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異文化간 커뮤니케이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 국력의 신장과 우수한 예술인.체육인들의 눈부신 활동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인의 이미지는 결코 좋지만은 않다.

실상 한인교포들이나 상인.관광객들이 가는 곳에 한인 기피현상이나 심하면 규탄운동까지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지구촌에서 환영받는 좋은 이웃이 되는 노력을 소홀히 해 왔다는 뜻이다.

국제사회의 협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오늘날, 이러한 평가는 우리를 고립시키고 우리에게 큰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비록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이 됐지만 한국인이 세련된 문화인이라기보다 거칠고 교양없는 사람들이라는 혹평이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다 (多) 문화, 다 (多) 종족 속에서 빠르게 형성돼가는 지구촌 일터에서 타 (他)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소외되고 도태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가 좋은 이웃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미의 과테말라에는 많은 한국인 의류 제조업자들이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과테말라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국인에 대해 현지 주민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혹사시키는'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미국 대도시의 가난한 소수민족이 사는 곳에서 장사하는 한인들에 대한 평판도 별다를 것이 없다.

한인들의 이러한 행동은 영어 표현에 있는 대로 '밥 주는 손을 문다' 는 격이다.

로스앤젤레스의 인종폭동때 우리교포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손해를 보았는가.

그러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보인 그 폭동의 이면에는 종족 차별과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를 등한히 해 온 우리 교포사회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새해 들어 국내의 신문.방송에서 펼치기 시작한 '세계인이 되자' 라는 운동은 꼭 필요하고 환영할 일이다.

세계화시대 지구촌에서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교양과 에티켓 습득뿐 아니라 한인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교육을 통해 하나씩 풀어 나가야 한다.

첫째는 이 (異) 문화 이해.소화능력의 결핍과 세계 공용어가 돼가고 있는 영어 및 기타 외국어 구사력의 문제다.

해결책은 영어교육의 조기화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이 다문화.다언어 환경 속에서 모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얼마전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다수가 타문화를 이해하는 능력과 마음의 준비를 우리 교육과정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자기문화의 바탕 위에 다른 문화를 접하고 소화하는데 편견이나 거부감을 유발하지 않도록 이른바 'culture - free attitude' 를 길러주는 것을 교육의 초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문화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우리나라처럼 집단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개인주의와 실리주의에 입각한 서구사회나 서구적 가치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제기구 및 다국적 기업에서 활동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격요건이다.

둘째는 종족편견을 극복하는 일이다.

국경 없이 활동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마치 백인종인 양 백인종은 우대하면서 유색인종은 멸시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교육해야 한다.

기본인권, 즉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갖는다는 개념과 보편윤리가 지구촌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대두되는 21세기에 종족편견이나 남녀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선진대열에 참여할 수 없다.

셋째는 남을 패자로 만드는 이김을 승자의 개념으로 잘못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웃과 같이 어울려 살며 공동선을 추구하고 북한과 같은 음지의 사람들을 돌보며 공동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이기는 삶이라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제는 철저한 가정.학교.사회교육으로 모나지 않고 유연하게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융화할 수 있는 교양있고 세련된 지구촌의 우수한 중산층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태릉선수촌이 우리 체육인재 양성의 요람이 된 것처럼, 세계화시대 이문화 커뮤니케이션 훈련원을 세워 우리 젊은 이들이 세계인으로 처세하는 기술과 마음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할 책임이 정부와 교육기관에 있다.

具三悅 유니세프 총재고문 (뉴욕에서)

◇ 필자약력

▶57세▶고려대 행정학과졸.미 컬럼비아대 신문학 석사▶코리아헤럴드 기자▶AP통신 국제뉴스부장.유엔특파원.로마특파원▶유니세프 대변인▶유엔본부 진흥섭외국장.50주년행사총괄국장▶유니세프총재고문 겸 아시아청년TV 대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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