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이제는 민생 정치” … 민주 “DJ 유지 받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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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24일 당정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左).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뉴시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났다. ‘장외의 훈수 정치’로 연장돼 온 3김 시대도 한 축의 상실과 함께 빛을 잃게 됐다.

24일 한국 정치는 현실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국회 정상화, 대주주를 잃은 민주당의 진로, 여야 관계 등의 숙제는 이제 현실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일상 정치로의 복귀를 촉구했다. “조문정국이 끝났으니 민생정국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했다. 9월 1일 열리는 정기국회를 어떻게 운영할지 논의하자는 거였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소장 진수희 의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신용도가 낮은 서민에게 최대 7조5000억원 규모의 생활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서민신용보증기금’을 설립하자는 안을 담은 입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반면 민주당의 선택은 조문정국을 연장하자는 것이었다. 기간은 1주일. 당 회의에선 중앙당사에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걸기로 결정했다. 정세균 대표는 25일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를 방문해 추모 행사도 연다.

국회 정상화는 그래서 아직은 요원한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168석을 가졌지만 단순한 국회 개회가 아닌, ‘정상화’는 84석 민주당의 결정에 달렸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날 민주당 회의에서 “국회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우상호 대변인)고 한다. 미디어법 처리로 시작된 장외 투쟁의 마무리, 김 전 대통령이 유지(遺志)로 남겼다는 범야권 대통합 등등 숙제가 너무 많아서라고 한다.

하지만 국회의 1년 농사 중 가장 큰 ‘정기국회’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도권·비당직·중도 성향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야당 내 등원론은 소리 없이 불어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단행할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 여권이 제기하는 개헌 등의 정치 개혁 논의, 예산국회의 중요성 등은 민주당의 ‘등원’ 결심을 부추길 수 있다.

변수는 국회 복귀를 ‘회군’으로 인식하고 있는 강경파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민주당 온건파들은 “한나라당이 최소한의 명분을 주었으면” 하고 기대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민주당의 조문정국 연장 1주일이 끝나는 9월 첫 주에 국회 정상화의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자리를 둘러싼 야권의 내부 경쟁도 포스트 조문정국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민주당 정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제1야당 대표로서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여야 관계에서 장외 투쟁 같은 강경책을 주로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문정국의 연장을 결정한 것도 ‘산토끼’(중도층)보다 ‘집토끼’(지지층)를 당장은 더 중시하겠다는 정 대표의 선택인 셈이다.

반면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대표 등 차기를 겨냥한 야권 내 잠재 경쟁자들의 각개약진은 정 대표 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벌써부터 민주당 안팎에선 DJ의 계승자임을 내세우는 적자(嫡子) 경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 대표가 제1야당 대표로서의 책무를 앞세워 눈앞의 선명 투쟁에 치중하다 보면 경쟁자들과의 ‘미래 선점’ 경쟁에선 보이지 않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2004~2005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개정 등에서 여권을 상대로 강도 높은 선명 투쟁을 하는 동안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 등 일하는 이미지로 여론 지지율을 역전시킨 사례를 든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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