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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도 석유 벗어나 ‘그린혁명’ 동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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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중동이나 아랍 세계란 말 대신 나는 서아시아(West Asia)와 북아프리카(North Africa)를 포괄한 WANA라는 말을 즐겨 쓴다. 이 WANA 지역 문제는 각국 정부가 지구촌 경제위기로 인한 경고음을 무시하고 현상 유지 정책에 급급한 것이다. WANA 경제는 국제 원조와 원유 판매 수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다. 이 지역의 연명 장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회 전반에 이른바 ‘네덜란드병(자원 수출로 유입된 막대한 외화 때문에 임금·물가 상승이 일어나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유행하고,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이처럼 원유와 해외 원조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경제는 탐욕과 분란을 낳는다고 정치학자들은 경고한다.

산유국이 아닌 나라에선 노동이 부의 원천이다. 그러나 산유국에선 막대한 원유 판매 대금, 국부펀드 투자 이익 등 금융소득 때문에 노동에 대한 동기 부여가 희박해진다. 노동과 부의 창출 사이에 연관성이 사라지고 이런 현상은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정치적 동력이 소진되고 생산이 아닌 소비 중심의 사회가 된다. 아랍 세계의 높은 실업률엔 이런 배경이 숨어 있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중동과 북아프리카(MENA) 지역은 유가가 낮게 유지됐던 1975~99년 1인당 소득이 25%나 줄어들었다. 반면 2000년 이후엔 고유가 덕에 각국의 경제성장률이 치솟았다.

불로소득을 추구하다 보면 단기적인 수익과 혜택만 노리는 격렬한 정쟁이 벌어지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정책 실패가 거듭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쟁은 장기적으로 사회에 이익을 가져오는 정책 경쟁과 뚜렷이 대비된다. 최근 인도의 싱크탱크인 ‘전략전망그룹(SFG)’은 ‘중동의 분쟁 비용’이란 보고서에서 지난 20년간 이 지역이 각종 분쟁으로 치른 대가가 12조 달러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건설적인 정책 대안은 없는 것일까. 근대적 산업 기초가 없는 이 지역 국가들은 원유 판매 수익을 바탕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중동의 많은 나라가 국부 펀드를 세워 원유 판매 수익을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 농업과 산업에 대한 투자 여력이 별로 없다. 어떻게 지역 내 생산 능력을 키우고 근대적 산업 기초를 건설하느냐가 관건이다.

효과적인 변화의 전제 조건은 개별 국가에서 지역 단위로 정책 노선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기구가 설립돼야 한다. 지역 안정화 펀드나 식수·에너지 공동체, 지역사회 결속과 공동 산업 정책을 위한 실무기구 등 말이다. 지역 전체로 시야를 넓히지 않으면 WANA 국가들은 분쟁에 휘말리거나 더 혹독한 경제 침체를 겪을 우려가 크다. WANA 국가들은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엔진 시대의 1차 산업혁명, 석유로 움직이는 내연기관이 추동한 2차 산업혁명 때 모두 뒤처졌다. 그 덕에 역설적으로 세계 경제위기로 망가져 구제금융을 퍼부어야 할 산업이 없다. WANA 국가들이 그린·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엘 하산 빈 탈랄 요르단 왕자 서아시아·북아프리카포럼 의장
정리=정용환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