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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기침 없다고 방심하다 … ‘도미노’ 시작되면 손쓰기 힘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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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의 결정적 사인이 됐던 폐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도 급성 폐렴으로 병세가 악화된 지 20일 만에 숨졌다. 미국의 배우 찰스 브론슨·브렌다 조이스(‘타잔’의 제인역)·에바 가드너·수전 헤이워드의 사망도 폐렴이 주범이었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의사 윌리엄 오슬러는 1세기 전에 ‘폐렴은 노인의 친구’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폐렴 환자의 절반 이상, 폐렴으로 숨진 사람의 9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65세 이상 노인은 폐렴구균 백신, 인플루엔자 백신을 반드시 맞아야 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 접종을 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면역력 떨어져 입원기간도 젊은 환자의 두배

노인은 감기 등에 걸린 뒤 곧잘 폐렴으로 발전한다. 나이가 들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다. 영양 상태도 대체로 불량하다.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COPD)·당뇨병·심장병·신부전·암·뇌질환·간질환 등 폐렴 발생을 돕는 질환을 한둘 정도 갖고 있다. 김 전 대통령도 만성 신장부전으로 6년 가까이 신장 투석을 받고 있던 터였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임채만 교수는 “나이가 들면 기침 반응이 떨어져 이물질을 잘 뱉지 못하고, 삼키는 능력이 줄어 음식이 바로 기도나 폐로 들어간다”며 “이 때문에 노인이 복용 중인 약 가운데 사레가 잘 걸리도록 하는 것도 있다”고 경고했다.

폐렴은 폐렴구균(가장 흔한 원인균) 등 세균과 인플루엔자 등 바이러스에 감염돼 폐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폐렴으로 외래 진료를 받은 환자의 사망률은 1% 이내다. 입원이 불가피한 환자라면 사망률이 8∼15%로 높아진다. 노인성 폐렴 환자는 10명 중 8명 이상이 입원치료를 요한다. 입원 기간도 젊은 환자의 두 배다. 특히 중환자실(집중치료실) 신세를 져야 하는 중증 폐렴 환자의 사망률은 40% 이상이다.

폐렴 도미노 땐 생존율 잘해야 20%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정기석 교수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거나 도파민 등 혈압상승약을 처방하는 폐렴이 중증 폐렴”이며 “김 전 대통령의 폐렴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의료진의 집중치료를 받아도 폐렴이 나아지지 않으면 위독 상황이다. 폐렴구균 등이 낸 독소가 혈액 내에 들어가면 패혈증→패혈성 쇼크→뇌·심장·신장·간 등 여러 장기가 망가지는 다발성 장기부전→급성 호흡곤란증후군 등 절체절명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다. 호흡곤란증은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에서도 올 수 있다.

아주대병원 호흡기내과 황성철 교수는 “‘폐렴 도미노’가 시작되면 생존 가능성은 10∼20%에 그친다”며 “환자가 이미 다른 질환을 갖고 있으면 생존율은 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면역력·체력이 바닥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노인이 폐렴에 걸리면 감염 사실을 신속하게 알아내 바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는 노인의 폐렴은 증상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한양대병원 호흡기내과 윤호주 교수는 “젊은 사람과 달리 고열·오한이 없다”며 “기침·가래도 적고 가슴 통증도 두드러지지 않다”고 조언했다.

이 때문에 조기 발견도 쉽지 않다. 폐렴 원인균에 감염된 채 며칠 ‘허송하다’ 보면 증세가 빠르게 진행돼 패혈증 등 심각한 상태에 빠진다.

신종 플루·계절성 인플루엔자·A형 간염 등의 예방법과 마찬가지로 개인 위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출 뒤 손발을 깨끗이 씻는 것은 기본. 사레가 들지 않도록 음식은 천천히 먹는다.

물 한 시간에 한잔 … 65세 이상은 백신 필수

감기·독감(인플루엔자)이 유행할 때는 되도록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과 병원 출입을 삼간다. 방의 에어컨은 늘 청결하게 관리한다. 에어컨에 오염된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냉방병이 폐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실내엔 가습기·실내분수·어항·화분 등을 놓거나 수건을 널어 호흡기가 마르지 않도록 배려한다.

노인 주변에서 흡연은 금물. 간접 흡연으로 인해 가래를 밀어 올리는 기관지 섬모의 기능이 떨어지면 호흡기 질환에 걸리기 쉽다.

적절한 휴식과 수면, 충분한 영양 섭취도 필요하다. 과로·수면 부족·영양 결핍은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물은 한 시간에 한 잔씩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 기침할 때 폐의 분비물이 쉽게 밖으로 빠져 나온다.

경희의료원 호흡기내과 강홍모 교수는 “65세 이상 노인은 폐렴구균 백신·인플루엔자 백신을 반드시 맞아야 한다”며 “폐렴구균 백신은 노인성 폐렴, 특히 중증 폐렴 예방 효과가 있고 이로 인한 사망률을 낮춰 준다”고 소개했다.

폐렴구균 백신은 5년에 한 번 맞으면 된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매년 9∼11월이 접종 적기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호흡기 감염에 의한 입원율·사망률을 낮춘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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