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자격증 취업' 어렵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뭐 할 일 없을까.' 대부분 주부들의 머리를 끈질기게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상당수 주부들이 '유망' 하다고 알려진 자격증을 따려고 관련 학원.기관.문화센타 등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자격증이 과연 장미빛 미래의 입장권이 되어줄까.

주부 최은경 (38.서울도봉구창동) 씨는 '보육교사 수요가 크게 늘 것' 이라는 소문을 듣고 1년을 투자해 보육교사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자격증을 활용할 생각이 없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해도 한 달에 50만원을 벌기 힘들었어요. 그동안 집안은 엉망이고…. 잃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그만두었습니다."

번역사자격증에 도전했던 정혜정 (34.서울관악구신림동) 주부도 결국 자격증 취득을 포기했다. 학원을 다녀본 결과 1급 자격증을 딴 수강생은 하나도 없었고 2급.3급 자격증은 따도 만족할 만한 일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

서울 송파구 오륜동에 사는 주부 김연숙 (44) 씨는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러나 60명 수강생 중 5명이 합격했는데 그 자격증으로 취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괜찮은 자격증을 가지고 돈도 벌면서 가정 생활도 무리없이 병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저 꿈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실제 주부에게 괜찮다고 소개되는 자격증의 거의 모두가 당장 취업과 연결되지 않거나, 취업이 되더라도 낮은 임금에 중노동을 해야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권영진 차장은 "자격증을 취업과 직결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며 "단지 동등한 조건이라면 자격증을 가진 쪽이 조금 더 유리할 수 있다" 고 전한다.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주택관리사.실내건축기능사.컴퓨터속기사.번역사 등 자격증이 이들 교재를 판매하는 교재업자들에 의해 과장돼 알려져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가령 컴퓨터속기사의 경우 입법부에서 극히 소수 인원을 선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교재판매업자들은 '대폭 충원 계획' '전산화에 따라 필요 인원 절대 부족' 등으로 광고했다.

따라서 자격증을 준비할 때는 매스컴의 피상적인 소개나 학원, 교재판매업자의 말을 믿고 섣불리 도전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보아야 한다.

이미 그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나 관련분야의 실무자를 찾아 '살아있는' 정보를 구하는 것도 필수. 당장 취업에 급급해 하기보다는 '기회가 오면 잡으려' 준비한다는 자세로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부 이종희 (33.서울중랑구신내동) 씨는 제과.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제과점에 취직하려했지만 '현장 경험이 없다' 며 퇴짜를 맞았다. "그렇지만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일할 수 있고, 창업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격증 취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고 이씨는 말한다.

국가공인기관의 자격증이 아니더라도 최근에는 '독서지도사' '어린이 논술지도사' '종이접기지도사' 등 비교적 주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격증 제도도 많다. 이들은 국가공인자격증이 아니라 강좌를 개설한 업체.협회 등에서 주는 자격증. 그러나 이들 자격증을 가지고 취업 혹은 부업을 시작한다 해도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 한다.

주부 A씨 (35) 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모아 독서지도를 하고 2년간 1천5백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개가 (?)를 이루기는 했지만 지난 2년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시끄럽게 하니까 이웃의 눈초리가 달라졌어요."

주부들이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통' 을 겪어야 한다. 주부 김향란 (36.대전시유성구어은동) 씨는 법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연 4천만원대의 수입을 올리지만 자격증 공부를 위해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8개월을 칩거했었다.

자신이 할애할 시간과 노력의 절대량이 얼마만큼인지 냉정하게 따져보고 도전하는 것이 실패와 실망을 줄일 수 있다.

이경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