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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각 부처에 의원 100명 파견, 관료주의 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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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10면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오른쪽)가 17일 6당 대표 토론회에 참석해 아소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지난달 중순 재무성 인사가 일본 관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핵심 부서인 주계국의 가가와 슌스케 차장이 주계국장 바로 아래인 총괄심의관으로 발령받은 게 핵심이었다.

8·30 총선 뒤 일본 정치 이끌 민주당

가가와는 도쿄대 법학부 졸업 후 1979년 옛 대장성(현 재무성)에서 관직을 시작한 인물. 재무성 최고의 엘리트 관료인 다나카 가즈호 심의관(아베 신조 전 총리 비서관 출신), 기노시타 야스시(木下康司) 주계국 차장이 입성 동기다. 이들보다 승진이 두 계단 늦었던 가가와가 이들을 앞지른 것이다. 사람들은 그 배경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대행이 있다고 분석한다. 가가와는 오자와 대행이 87년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의 관방부장관을 했을 때 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오자와는 “대장성에 이런 우수한 인재가 있었느냐”며 신임을 표시했다고 한다. 가가와는 훗날 영국의 양당정치 체제를 분석한 논문을 써서 오자와에게 전달했다. 외무성에서도 오자와 사람이 약진했다.

8·30 총선 승리를 목전에 둔 민주당의 대표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다. 그러나 막후에서 선거를 지휘하는 ‘어둠 속의 장군’은 바로 오자와다. 올 초 비서의 불법 정치헌금 문제로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최대 계파를 거느리며 막강한 당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민당에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로부터 정치를 배운 오자와는 계파 정치와 정관 유착 등 자민당의 악습을 단절하는 정치개혁에 도전하고 있다. 미·영을 예로 들며 양당제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한다. 연공서열, 복지부동, 로비, 이것도 모자라 퇴임 후에는 공기업 수장으로 ‘낙하산 인사’ 혜택까지 누리는 관료사회가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그대로 민주당의 공약이 됐다.

그래서 정책결정 시스템도 대수술을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자민당 정권에선 정부 제출 법안을 각의에서 결정하기 전에 여당의 ‘사전심사’로 허가를 받아왔다. 자민당 입장에선 “민의를 정부 의사결정에 반영시킨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각 부처들은 확실하게 사전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의원들과 사전 조율을 해왔다. 그 바람에 의원입법보다 정부부처의 법안 발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에서 이를 ‘정관유착’의 온상으로 지적해 왔다.

민주당은 정치 주도의 사령탑 역할을 할 총리 직속의 ‘국가전략국’을 신설한다. 또 당 정조회장에게 주요 장관직을 겸임하게 함과 동시에 각 부처에 100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파견해 당이 정책 결정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또 각료와 부장관·정무관의 ‘정무 3역’이 각 부처의 정책 입법·조정·결정을 주도하게 된다.

예산 편성과 외교정책의 큰 흐름 역시 국가전략국에서 정한다.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추진해 온 정책과제도 신설되는 ‘각료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한다. 그간 정부 의사결정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무차관 회의도 폐지된다.

민주당은 당초 각 부처 국장급 이상에게 일단 사표를 내게 하고, 새 정권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 간부를 퇴진시킬 계획이었으나 법률상 문제 등으로 철회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정치 주도의 성과는 정치인들의 역량에 달린 것인데 너무 의욕만 앞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투표일까지 일주일을 남겨둔 지금,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의 승리가 확실해지고 있다. 오자와는 16일 자신의 지역구인 이와테(岩手)현 유세에서 “어떻게든 과반수를 차지하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총 의석 480석 가운데 241석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계 개편을 주도해 안정적인 집권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의석수다.

현재의 흐름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크다. 480석 중 민주당이 300석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이 18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투표할 정당으로 비례대표는 민주당 40%, 자민당 21%로 나타났다. 도쿄신문의 조사에서는 소선거구에서 민주당 35.8%, 자민당 18.7%로 압도적인 우세였다. 잡지 주간포스트는 민주당 267석, 자민당 153석으로 예측했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거나 연대가 예상되는 사민·국민신당과의 통합의석이 과반일 경우엔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선다. 그럴 경우 오자와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할 전망이다. 다만 민주당의 참의원 단독 과반이 무너진 상태라 경우에 따라선 정권 기반이 순탄치만은 않다.

오자와의 입김이 강한 정책공약 중에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목표로 아시아 외교를 강화한다”는 대목도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국가 추도시설 건립과 종군위안부 사죄·배상을 검토하고 있다.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허용에 대해서도 전향적이어서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은 민주당 정권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이 ‘대등한 미·일 동맹 구축’을 내세우며 전통적인 관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을 주장하는 등 자주노선을 강조해 왔다.

국민생활 지원을 위한 정책들은 ‘선심성 공약’이 대부분이다. 출산 여성에게는 55만 엔(약 73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모든 어린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달 2만6000엔의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현행 아동수당제도는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린이 1인당 월 5000∼1만 엔을 지급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립고교 수업료를 무상화하고 매달 7만 엔의 최저보장연금을 지급하는 등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통해 빈부 격차 확대에 대한 국민 불만을 해소할 계획이다. 자민당은 “재원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공약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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