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말국회 우왕좌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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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관례와 달리 연말연시에도 국회가 열리는 것은 국회가 그동안 베짱이처럼 세월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국회는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하지만 여야가 하기에 따라선 지난 날의 실점을 만회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야가 입법부의 본업인 법안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적이 실망스럽다.

연말의 국회와 일부 부처는 한마디로 우왕좌왕이다.

법안이란 모름지기 해당부처의 신중한 검토→부처간 조율→여야의 합리적 토론→신속한 처리라는 정연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특히 경제위기극복에 필요한 민생법안이나 규제개혁법안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작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면 적잖은 경우에 정연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먼저 일부 부처는 법안준비 자세가 낙제점이다.

성희롱을 처벌하는 법안의 경우 대통령직속 여성특위.노동부.법무부 등 3개부처가 제각각 추진해 성희롱의 개념과 징벌에서 들쑥날쑥이다.

정부는 규제개혁이라고 요란하게 선전하면서 세무사회 등 사업자단체의 복수화를 허용하는 법안들을 마련했는데 정작 대표적 단체인 변호사협회에 대해선 법무부가 아예 법안조차 내지 않았다.

'같은 식구' 의 사정을 배려한 때문이다.

이러니 정부가 세무사회.관세사회 등의 관련법안을 밀어붙일 힘이 생기겠는가.

법안은 상임위 단계에서 더욱 뒤죽박죽 된다.

정부와 국민회의는 마사회 관할권을 문화부에서 농림부로 옮기는 법안을 내 이미 행정자치위가 다루고 있다.

그런데 문화부를 관할하는 문화관광위에선 국민회의를 포함한 일부 의원들이 마사회를 문화부에 그대로 두는 법안을 따로 만들어 심의하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의 관할권을 둘러싸고도 보건복지위와 환경노동위가 따로 따로 법안을 통과시켜 앞으로 이를 다루어야 하는 법사위는 법안교통체증에 걸릴 참이다.

상임위는 반대로 사회적으로 찬반양론이 뜨겁게 맞서 부담이 될만한 법안의 처리는 남의 상위로 떠넘기는데 적극적이다.

환경노동위는 정부가 노사정위 합의에 따라 넘긴 전교조합법화 관련법안을 교육위로 넘기려 시도하다 국회의장의 조정으로 결국 떠맡게 됐다.

이같은 법안의 혼선은 전반적인 법안심의에도 주름살을 끼쳐 규제개혁 관련법안들의 처리가 대체로 지지부진하다.

물론 국회의 법안심의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소음은 생산적일 수 있다.

특히 정부의 규제개혁심의에 입법부가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입법부가 이를 다룰 때는 여러 의견이 나올 법하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관련법안에 대해 이익단체들이 상임위원들에게 강하게 주장을 전달하는 한국식의 로비관행도 불가피한 점이 있다.

하지만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나 이의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입법부가 협의를 게을리해 처리가 늦어지는 법안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이 어수선해지기 쉬운 연말, 입법부는 중심을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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