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챙기는 ‘에듀파파’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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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사교육회사 주최로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입시설명회. 수험생을 둔 몇몇 아버지들이 대입 관련 자료를 받은 뒤 설명회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상선 기자]

기업체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는 최모(48·서울 대치동)씨는 서울 강남 지역 생활정보지를 꼼꼼히 읽는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특목고에 보내는 데 필요한 최신 학원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최씨는 주로 커리큘럼과 교재 수준, 숙제의 양 등을 따져 본다. 학원 탐색을 마친 그는 아들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한 학원을 골라 보냈다. 최씨는 “주말에는 영어 작문과 독해도 같이 공부한다”며 “아이를 위해 일찍 퇴근하고 주말에도 약속을 가급적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의 아들은 “바쁘다며 잘 놀아 주지도 않던 아빠가 형처럼 느껴진다”며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자녀 교육 뒷바라지에 열심인 아빠가 늘고 있다. 일명 ‘에듀파파(edupapa)’다. 이들은 바쁜 사회 생활을 이유로 아내에게 미뤘던 자녀 교육 문제를 직접 챙긴다. 자녀를 가르치거나 학원 선택, 교재 분석, 학원 등·하원까지 책임진다.

공인회계사인 권모(50)씨는 지난해 의사인 아내 대신 큰딸(대학교 1학년)의 대학 입시설명회에 주말마다 참석했다.

권씨는 “아내가 바빠 대신 나섰다”며 “중학생인 둘째 딸의 학원을 선택할 때도 커리큘럼을 점검하고 필수 교재를 골라 준다”고 말했다.

에듀파파는 중산층 이상의 40대 고학력·전문직이 많다. 직접 공부를 가르칠 실력이 있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전해 줄 능력도 있는 이들이다. 특히 자녀를 특목고나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의욕이 강하다. 회사원인 윤모(46·서울 대치동)씨는 “인맥과 학벌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에 좋은 학교에 보낼 욕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특목고 학원 하이스트의 김영일 상담실장은 “입시설명회를 찾는 남성이 예년보다 4~5배 늘어나 전체의 15%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 평가이사는 “대입 설명회 참석 학부모 중 30~40%가 남성”이라고 전했다.

◆아내 고통 덜어 준다=부산 지역 A대학 김모(43) 교수는 여름방학에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서울 대치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임시로 살고 있다. 아들은 3주 코스 특목고 대비 학원에 다닌다. 김 교수는 “입소문에 따라 강사를 고르는 아내보다 분석적이고 객관적으로 강사를 평가해 직접 시간표도 짜 줬다”고 말했다.

고교 종류가 많아지고 입학사정관제 등 대입 전형이 복잡해지면서 아빠들의 역할도 커졌다. 엄마의 사교육 정보력에다 아빠의 분석력이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에듀파파는 꼼꼼하게 학원 커리큘럼과 교재·강사 수준까지 따져 학원들은 ‘까다로운 손님’이라고 부른다.

에듀파파들은 중·고교 참고서와 씨름하기도 한다. 회사원 박모(45·서울 중계동)씨는 “점심시간마다 인터넷 강의로 수학을 공부해 중3 딸을 가르친다”며 “25년 만에 수학을 다시 하려니 힘들지만 학원비가 줄어들고 딸과의 대화 시간도 늘어 좋다”고 말했다. 초등생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황철규(38·경기도 용인시)씨는 다른 에듀파파와 정보를 나누기 위해 인터넷에 ‘우리아빠(www.mydad.co.kr)’ 커뮤니티를 운영 중이다. 서울대 김난도(소비자학과) 교수는 “부부가 자녀 교육을 함께 책임지고 고통을 분담하면 교육 효과가 커진다”며 “하지만 자녀 일에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면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글=박수련 기자, 김경원·하태현 인턴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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