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쏟아진 말말말]말로 본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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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사정 = 9월부터 본격적으로 휘몰아친 사정태풍에 한나라당 정형근 (鄭亨根) 의원은 "사람을 많이 잡아들여 무인사화 (戊寅士禍) 라고 부른다" 고 비난. 김광원 (金光元) 의원은 "우리당 의원들에겐 검찰소환 전화 아니면 여당의 입당 촉구 전화만 온다" 고 여권에 휘둘리는 처지를 개탄했다.

'걸리버 의원들' 이라는 말이 회자 (膾炙) 된 것도 이런 때문. 휴대폰 선전광고 카피의 "걸면 걸린다" 는 말을 따온 것으로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한나라당의원들은 얼마든지 잡아 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김윤환 (金潤煥) 의원은 "나는 제도권 내에서 나름대로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 이라고 항변하며 표적사정론을 폈다.

표적사정 시비에 서울지검은 '안테나론' 으로 맞섰다.

"안테나를 세워두면 모든 전파가 다 잡히는 것이지 입맛에 맞는 주파수만 골라 수신할 수는 없다" 는 것.

◇ 의원 빼내가기 = 봄.가을 두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이뤄진 야당의원들의 여당행 (行)에 한나라당 맹형규 (孟亨奎) 대변인은 "시정잡배보다 못한 작태"

"야당을 주머니 공깃돌 정도로 생각한다" 며 맹비난.

이에 자민련 박태준 (朴泰俊) 총재는 "정치는 힘이며 힘은 곧 숫자" , 김창영 (金昌榮) 부대변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한나라가 두나라, 세나라로 가는 길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 이라며 개의치 않았다.

한나라당 이규정 (李圭正) 수석부총무는 4월 "대도 (大盜) 조세형은 물건을 훔쳤다고 10년 넘게 징역을 살았는데 대행 (代行) 조세형은 야당 국회의원들을 훔쳐가고 있다" 고 비난했다.

그런 그였지만 본인이 가을 들어 탈당, 국민회의로 갔다.

◇ 총풍과 세풍 = 8월 31일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소위 '양풍 (兩風)' 이 휘몰아치자 한나라당 장광근 (張光根) 부대변인은 "평생 야당만 하다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정치자금에 대해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대통령 말씀에 혼란을 느낀다. 성공한 부패는 죄가 아닌가" 라고 역습.

같은 당의 김영선 (金映宣) 의원은 "검찰은 드라마센터다. 서류 한장 가지고 북풍드라마를 쓰고 있다" 고 야유했다. 李총재는 동생 회성씨가 구속되자 그 직후인 12월 14일 의원총회에서 강력한 대여투쟁을 천명하며 "나는 내 자신을 버렸다.

감옥에 잡아가두겠다면 들어갈 것이고 죽이겠다면 죽겠다" 고 결연한 심정을 피력. 청와대 여야총재회담 이후에도 사태가 꼬이자 한나라당에선 "잠든 총풍 다시보고 꺼진 세풍 믿지 말자" 는 말이 표어처럼 나돌았다.

◇ 제2건국.햇볕론.국방 = 한나라당 이세기 (李世基) 의원이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건국의 시조, 개국황제가 되고 싶은 것이냐" 며 金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김정길 (金正吉) 행자부장관은 "요즘 제2건국운동은 동네북이고 소위 왕따가 됐다" 며 어려움을 토로.

천용택 (千容宅) 국방장관은 군 관련 사고.사건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부의 햇볕론 등 대북 유화정책 탓에 야당의 뭇매를 더 맞아야 했다.

한나라당 김덕룡 (金德龍) 의원은 "동해상에 엔터프라이즈호와 현대 금강호가 동시에 뜰 수 있다고 보느냐" 고 다그쳤다.

결국 정기국회 종반 들어 야당이 제출한 千국방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됐는데 한나라당은 1백35대 1백35표라는 가부동수가 나오자 "법적으론 부결이지만 정치적으론 가결" 이란 말로 자위.

◇ 여권 갈등 = 내각제를 둘러싼 여권내 갈등이 깊어가는 가운데 김종필 총리는 12월 중순 "참는 게 지성 (知性) 이지만 하다하다 안되면 몽니 (심술과 훼방) 를 부리는 것이다. 우리도 성질이 있으니까" 라고 속마음을 토로하면서 '몽니' 가 유행.

◇ 기타 = 5월 김규섭 대검수사기획관은 "대통령이 경제를 잘 모르면 경제수석은 용어부터 가르쳐줘야 할 의무가 있다" 며 김인호 전경제수석에게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된 사유를 설명. 이와 관련, "무지는 무죄" 라는 YS를 빗댄 야유도 있었다.

4월 정부산하단체 인사가 이뤄진 뒤 한나라당 이원형부대변인은 "국군의 날도 아닌데 웬 낙하산 천지냐" 고 편중인사를 힐난. 4월 보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朴槿惠) 후보가 당선되자 김호일 (金浩一) 부총무는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듯 고 박정희 대통령이 산 김대중 대통령을 이겼다" 고 주장.

김종혁.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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