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동정몰이에 클린턴 내심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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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의 이라크 공습이 종료된 지 채 10일도 지나지 않아 걸프해역에 전운이 또다시 짙게 깔리고 있다.

이라크가 서방이 설정한 이라크의 비행금지구역을 초계중인 영국군 전투기에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비록 전투기가 격추된 것은 아니지만 미.영 등 서방에 고분고분하지만은 않겠다는 전의 (戰意) 를 분명하게 표시한 것이다.

유엔특별사찰단 (UNSCOM) 의 입국을 거부한 데 이어 나온 행동이어서 미.영의 대응이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사막의 여우' 작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도발해옴으로써 미국으로선 초강대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됐다.

이의 만회를 위해서도 미국이 또 다시 대대적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 이라크의 계산 = 이라크가 미국의 재공격을 무릅쓰고 ▶유엔특별사찰단 입국 거부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묵살 선언에 이어 ▶영국기 공격 등 도발을 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 미국측은 '긴장을 유지해야 할 정치적 필요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계속되는 공격으로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라크' 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게 이라크의 노림수라는 것.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동정론이 일면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고 내부적으로도 효과적인 국민통제에 이용하는 다목적 카드가 되는 셈이다.

이라크가 최대 관영매체인 바벨지를 통해 26일 이례적으로 "러시아.중국.프랑스가 미국의 공격을 막는 데 협력하지 않는다" 고 한 비난에서도 이라크의 노림수를 엿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라크를 이해해줬던 3개국을 비난함으로써 미국과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미.영에 대한 국제적 비난여론을 더욱 확산시키려는 고단수의 외교공세로 풀이된다.

또 이라크 국민들에겐 '끊임없는 외적 미국의 위협' 을 부각시킴으로써 위기의식을 조장, 후세인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하는 내부 정치적 효과도 노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미국의 대응 = 미국의 입장은 단호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곤혹스럽다.

이라크의 공격에 대해 미 국방부는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정찰활동은 계속 강화될 것이며 미 정찰기는 앞으로 자기방어차원에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이라고 재차 선언했다.

클린턴 행정부 핵심들도 이라크 재공격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강경 분위기다.

클린턴은 여우작전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국내외로부터 거센 비난이 쏟아지고 오히려 후세인의 입지만 강화시켜준 형국이라는 지적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선다면 후세인의 기만 더욱 살려주게 된다는 게 클린턴 행정부의 입장인 듯하다.

지난 19일 공격이 끝난 직후 후세인이 "더 이상의 사찰은 필요없다" 면서 UNSCOM의 입국마저 거부했을 때 이미 응징조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상태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이라크가 문제를 일으키면 언제라도 공격명령을 내릴 것" 이라고 선언해 놓은 데다 여우작전에 동원된 병력도 거의 전부 걸프해역에 머물러 있어 공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러시아.중국.프랑스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반발과 탄핵으로 인한 국내 정치적 상황이 또 다른 공격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는 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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