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초고속 정보통신망 인터넷 안맞는 '구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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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21세기 '꿈의 통신망' 을 실현하겠다며 지난 95년부터 2010년까지 32조원을 들여 추진 중인 '정보고속도로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이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개발비로만 6천억원을 쏟아붓고 있는 초고속교환기 (ATM 방식) 는 별도 장치없이는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해 골칫거리로 전락했고, 전국 도시를 이을 값비싼 광케이블망 (8천억원) 은 이중.삼중으로 중복돼 깔리고 있다.

정보고속도로 사업은 행정기관이나 기업은 물론 시골 가정에서도 첨단 정보통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통신망을 혁신하려는 프로젝트로 ▶음성.영상 등을 보내는 장치인 초고속교환기 설치 ▶전국 단위의 광케이블망 구축 등 2개 부문이 핵심. 사업이 완성될 경우 국가와 관련 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일반 국민도 다양한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게 돼 삶의 질이 한단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개발 중인 ATM은 음성정보 전송 (기존 전화방식) 엔 유리하나 최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인터넷을 주고받기 어려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시장을 잃고 있는 ATM을 사용할 경우 인터넷 관련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고 수백억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는 등 정보고속도로 사업 전반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ATM으로는 인터넷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 며 "지금까지 투자한 ATM 개발비가 아깝고 이에 대한 책임 문제가 뒤따른다는 이유로 세계시장을 주도할 인터넷 산업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고 말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강홍렬 박사는 이와 관련, "미국은 2년 전 정보고속도로용 교환기를 ATM에서 인터넷 위주의 시스템 (IP 방식) 으로 바꿔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ATM에 매달리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IP 방식으로 새삼 기술개발에 나설 경우 기존 ATM에 대한 투자비 (6천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관련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지금이라도 바꿔야 할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내년 상반기에 ATM을 주요 대도시 전화국에 설치하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대당 2억~10억원짜리 별도 장비를 추가로 붙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통신업계 전문가들은 "이 경우에도 전송속도가 늦어지고 통화품질 저하 등의 엄청난 비효율 문제가 발생할 것" 이라고 말한다.

한편 광케이블망이 중복 매설돼 낭비되는 예산도 크다.

지난 21일 데이콤이 초고속통신망에 쓰일 광케이블 연결작업을 하고 있는 경기도능내리 양수역 인근 철길 옆. 직원들이 중앙선 철로를 따라 서울~양평 구간 통신망을 구축하기 위해 맨홀 속에 들어가 엄지손가락 굵기의 광케이블을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10여m 떨어진 국도변에는 한국통신이 최근 똑같은 광케이블망을 매설해 50~1백m 간격으로 표지판을 세워놓았다.

민간기업인 데이콤과 공기업인 한국통신이 모두 정부 예산을 들여 ㎞당 1억원 (공사비 포함)에 달하는 광케이블을 이중으로 깔고 있는 현장이다.

두 회사는 95~97년 사이 총 6천㎞ 이상을 이중으로 깔았고, 2002년까지 총연장 3만㎞가 넘는 광케이블로 전국 1백44개 도시를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 이정욱 연구위원은 "통화량이 많지 않은 중소도시에 이르기까지 광케이블망을 이중으로 연결하는 것은 예산 낭비" 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90년대 초 한전 (송배전 관리용).도로공사 (교통상황 체크용).철도청 (철도운행 관리용) 등 공기업들이 만든 통신망 5만7천㎞도 자체 수요가 미미해 사실상 '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광케이블이 삼중으로 깔려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깔아놓은 광케이블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계획된 구간만이라도 공기업의 기존 통신망을 활용하거나 최소한 중복매설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한다.

기획취재팀 유규하.이영렬.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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