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화 상승의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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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무디스사에 의한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 상향조정을 앞질러 원화가 크게 오르고 있다.

이것은 좋은 일에 끼인 걱정거리다.

국가의 신용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원화가 과대하게 오른다는 것은 지금부터의 수출전망을 매우 불안케 한다.

수출업계는 원 - 달러 환율이 1천3백원대 밑으로 가면 채산을 맞출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해 11월까지의 수출은 달러 금액으로는 지난해 동기 (同期)에 비해 오히려 2.6% 감소했다.

그러나 물량으로는 오히려 20.6%나 증가했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수출단가가 달러표시로는 18.5%나 내렸지만 이만한 인하요인을 원 - 달러 환율의 상승분이 벌충해줬기 때문이다.

달러 환율이 어느 선 밑으로 내려가면 이 효과가 증발해 버리고 결국 물량으로도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우리나라는 11월까지 3백59억달러에 이르는 무역흑자를 냈다.

연말까지 4백억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이는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무역흑자다.

역설적이지만 외환위기를 통한 원화의 급격한 하락이 이런 흑자를 만든 주된 공로자였다.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GDP) 은 지난해에 비해 약 6%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GDP를 구성하고 있는 요인들 가운데 민간소비는 12%, 시설투자는 무려 44%나 감소했다.

만일 수출이 20.6%나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6%보다 훨씬 더 깊은 나락 (奈落) 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출은 이것을 막아낸 유일한 부문이기도 했다.

지금 원화가 오르는 것은 무역흑자 때문에 외환보유고가 넘치기 때문은 아니다.

대규모 무역흑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현재 가지고 있는 약 5백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은 그 가운데 약 65%가 외국인 투자와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에 의한 것이다.

지금 원 - 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내리는 이유는 이런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왕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의 달러화 자금을 그들이 원화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신용등급이 오르면 이런 쪽으로의 외국자금 국내 유입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외국인 투자는 주식이나 실물 등 경제위기 여파로 값이 떨어진 자산을 구입하거나 아직도 다른 나라에 비해 이자가 비싼 예금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유입은 자산가격, 특히 주가의 충분한 상승, 금리의 충분한 하락, 그리고 수출감소에 따른 새로운 외환위기의 가시화 시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원화가 오르면 필경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라는 버팀목이 부러질 수 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외환위기마저 몰고올 위험이 크다.

정부나 중앙은행의 직접적 시장개입이 아닌 다른 정책 조합 (組合) 을 동원해 원화의 과도절상을 억제하는 것은 지금 매우 긴급한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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