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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경영학]9.경제전 지휘할 경영자 키워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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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순신 장군이 자살했다면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사한 직후부터 그의 자살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부하였으며 후에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유형 (柳珩)에 따르면 이순신은 평소에 "자고로 대장이 자기의 공로를 인정받으려 한다면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적이 퇴각하는 날에 죽어 유감될 일을 없애겠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숙종때 광주목사와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민서 (李敏敍) 도 "이순신은 전쟁 중에 투구와 갑옷을 벗고 스스로 적탄에 맞아 사망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 자살설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순신은 모략과 음해가 판치는 세상에서 세번씩이나 자리에서 쫓겨났고 두번씩이나 백의종군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국가적 위기에서 온 몸을 다 바쳐 나라를 구했지만 전쟁 중임에도 감옥에 갇혀 죽을 뻔했다.

이런 세태 때문에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살아 남는다 해도 전쟁이 끝나면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죽게 될 것을 짐작하면서 적의 조총도 피하지 않아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순신 자살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도 많다.

이순신은 평소 생사와 화복을 천명에 맡기고 전투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관을 갖고 있었으므로 모함과 벌이 싫어 미리 자살했다는 것은 그의 인품과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순신 자살설의 진위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시 세태 때문에 이순신 자살설이 일면 설득력을 갖게 됐고, 이런 세태는 그가 전사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에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했기에 지금 우리 사회의 풍토가 크게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순신같이 청렴한 공직자가 오히려 요령없는 사람으로 '왕따' 가 되는 경우도 많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 등 각계각층에서 이런 세태가 만연하고 있음을 자신있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거의 없을 것이다.

한 국가가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본은 인간자본 (Human Capital) 이다.

또 '기업은 사람이다' 는 말도 있다.

이같이 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인재이므로 회계학에서도 기업의 인적 자원을 자산으로 명시하는 인적자원회계 (Human Resource Accounting) 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혹독한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정부.기업 등 각계각층에서 이순신 같이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순신이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유성룡.권율.조헌.이원익 같이 자기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그를 적극 지원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자신과 가깝지 않고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온다 해도 강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감싸주고 도와주는 용기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기 이익에 눈멀어 훌륭한 사람을 모함하거나 내쫓는데 앞장서거나 이런 일에 함께 휩쓸리는 공범자가 돼서는 안되겠다.

4백년 전의 나쁜 세태가 나라를 구한 한 영웅의 삶에 좌절을 안겼듯이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이순신들을 죽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지금 많은 이순신들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경제전쟁에서 패해 남이 우습게 여기는 민족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지용희 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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