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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DMZ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상병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보초병이다.

50m 전방엔 북측 초소가 있다.

야간순찰 도중 그는 발밑의 지뢰를 감지하고 옴짝달싹 못한 채 주저앉는다.

이때 두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지뢰를 제거해준다.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로만 여겼던 북괴군이 생명의 은인이 된다.

그후 김상병은 양말.지포 라이터.펜트하우스를 들고 북쪽 초소를 찾는다.

진급 파티도 하고 술도 얻어 마신다.

적군이 친구로 바뀌었다.

북한 핵사찰 긴장과 '불바다' 론으로 휴전선은 전쟁공포에 휩싸였던 때였다.

마지막 적과의 파티가 있던 날, 한발의 총성이 어디선가 울린다.

양쪽 모두 무심결에 권총에 손이 간다.

부대 명사수였던 김상병의 손이 더 빨랐다.

생명의 은인인 적군 2명을 사살하고 돌아온 김상병은 자책감에 못이겨 권총 자살을 택한다.

북한쪽은 남한 특수부대원의 북파 살해로, 국군쪽은 북측 특수부대원의 납치 실패로 사건 수사는 종결된다.

20대 작가 박성윤의 소설 'DMZ' 의 줄거리다.

소설은 허구다.

그러나 2년 전 쓰여진 허구가 현실로 둔갑해 우리의 문제로 다가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판문점 경비부대 김중사의 북한군 내통설과 김중위 의문사를 연일 지켜보면서 아! 우리가 적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수백명 관광객이 줄지어 금강산 유람을 하고 재벌 왕회장이 판문점을 드나드는 현실에 취해 적과 친구, 안보와 화해를 분간치 못했다는 반성의 소리도 들린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김상병.김중사 입장에서 적과 친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 것인가고, 또 다른 하나는 안보와 햇볕이라는 대북 (對北) 이중정책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왜 새삼 이 문제를 제기하느냐 하면 바로 이 점이 향후 남북문제를 가름하는 중대 변수가 될 수 있고 이런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면 안보나 화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소설이든 현실이든 판문점 사건은 젊은 세대가 겪는 대북혼란감이 매우 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뿔 달린 도깨비가,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라는 새로운 발견이 주는 혼란감이 사병들 사이에 팽배하다면 우리 안보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과연 적인가 동반자인가 하는 초보적 문제마저 풀지 못하고선 제대로 된 군인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 군은 어떤 정훈.정신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판문점은 민족비극의 현장이다.

전쟁이 끝난 지 50년째 돼가지만 아직껏 50m 거리에서 총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비극이다.

적이면서 형제일 수밖에 없는 이 모순된 현실을 전쟁 미체험 세대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세월의 거리가 멀다.

이 먼 거리감을 메울 달라진 안보.정신교육이 필요하다.

달라진 상황에 달라진 세대를 위한 새로운 형식의 교육이 필요하다.

소설속의 김상병이나 현실의 김중위.김중사 모두 판문점 비극이 배태한 희생자들이긴 마찬가지다.

한 장교의 사인 (死因) 못지않게 DMZ, 나아가 전체 군인들의 적과 동반자간 혼란이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차제에 분명히 밝히고 그 대안을 찾는 것이 안보와 화해의 대북정책을 위해서 긴요하다.

젊은이들만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어른들마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북은 적인가 동반자인가 서로 헷갈리고 있다.

일부에선 햇볕정책이 군 기강 해이와 판문점 사태를 몰고 온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일부에선 뜨거운 가슴으로 북의 부모형제를 끌어안아야 통일이 된다고 맞선다.

전자가 냉전적 안보관이라면 후자는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다.

양자 모두 적의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나가야 할 이행기에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대북관이다.

방어적 개념의 철저한 안보를 토대로 북을 동반자관계로 끌어내야만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금강산관광.이산가족 상봉을 통한 인적교류가 선행되고 뒤이어 경협을 통한 물적 교류, 그다음 남북 당국간의 정치적 교류가 이뤄져 평화공존의 기본 틀을 짜야 한다.

이 모두가 튼튼한 안보를 토대로 가능한 일이다.

적을 동반자 관계로 이끌어내는 것이 판문점 비극을 종식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근거가 된다.

무조건 햇볕만을 외칠 게 아니라 적과 동반자 관계 설정의 필요성과 목표를

충분히 납득시켜 새로운 개념의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공론의 장이 시급하다.

권영빈(논설위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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