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베트남 방문]하노이 첫날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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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15일 오후 부인 이희호 (李姬鎬) 여사와 함께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 2박3일간의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金대통령은 16일에는 동남아국가연합 (ASEAN) 9개국 및 한.중.일 3국간 정상회의 (9+3회의) 와 ASEAN.한국이 참석하는 정상회의 (9+1회의)에 참석한다.

◇정상회담 = 金대통령과 李여사는 오후 5시30분 (이하 한국시간) 하노이 시내 주석궁에 도착, 트란 둑 루옹 베트남 국가주석 부부의 영접을 받고 인사말을 교환한 뒤 남녀 화동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이어 金대통령 내외는 루옹 주석으로부터 주석궁 앞에 도열해 있던 캄 부수상 겸 외무장관 등 베트남 고위관계자들을 소개받은 뒤 이규성 (李揆成) 재경부장관, 한덕수 (韓悳洙) 통상교섭본부장,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임동원 외교안보수석, 박지원 (朴智元) 공보수석 등 우리측 일행을 차례로 소개했다.

金대통령 부부는 이어 주석궁 2층 접견장으로 옮겨 루옹 주석 부부와 기념촬영을 한 뒤 잠시 환담. 金대통령은 먼저 "초청에 감사하며 베트남이 아시아에서도 가장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점을 높이 평가한다" 며 "이번 방문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더욱 공고해지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각하도 한국을 방문해 양국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며 루옹 주석의 한국방문을 공식 초청. 루옹 주석은 이에 대해 "이번 방문이 두나라 국민들 사이에 우호와 협력관계를 한층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고 화답.

루옹 주석은 또 "대통령과 여사께서 체류기간중 건강하시고 커다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 면서 "베트남에 오신 金대통령과 여사님을 위하여" 라고 샴페인건배를 제의했다.

양국 정상은 공식환영행사를 끝낸 뒤 접견실 바로 옆에 마련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 비공개로 한.베트남 확대정상회담에 들어갔다.

두 정상은 실질협력쪽으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경협 프로젝트를 놓고 밀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金대통령은 베트남전쟁때 적대국이었던 양국간 '불행한 과거' 를 언급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관계 구축을 강조했으며, 이에 루옹 주석도 그같은 관계발전을 다짐.

이와 함께 과학기술분야의 협력증진을 위해 한.베트남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정례적으로 개최키로 하고 제1차 공동위를 99년 서울에서 열기로 약속. 회담에서 金대통령이 한국의 대북 (對北) 포용정책을 설명하고 루옹 주석도 공감을 표시했다.

이에 앞서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한 金대통령은 조원일 (趙源一) 주베트남대사와 지아 베트남투자계획부장관 등의 영접을 받았다.

한편 홍순영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은 이번에 공식수행원에서 빠졌다.

이호진 (李浩鎭) 외교부대변인은 "국회에 계류중인 한.일어업협정 비준안 통과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수행하지 않은 것" 이라고 설명.

외교 실무부서 책임자가 국내 정치문제로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기업인 간담회 = 정상회담을 마친 후 金대통령은 대우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리는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인 1백58명을 초청, 간담회를 갖고 우리나라 경제회생을 위해 베트남 진출 기업인들이 적극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金대통령은 또 카이 베트남 총리가 ASEAN 정상회의 참가자들을 위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金대통령은 우리 기업인들에게 정상회담 내용을 설명한 뒤 "지난 75년 우리가 이 곳에서 철수할 때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5천5백명이나 진출해 있다니 참으로 마음 든든하게 생각한다" 면서 "베트남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나 발전잠재력, 경제적 상호 보완성을 감안할 때 양국관계의 발전가능성은 매우 크다" 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또 "이제 외환위기는 끝났다" 며 "내년에 IMF 자금 70억달러 이상을 상환하고도 연말에 외환보유액 5백억달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장담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과거정권의 정경유착 폐해를 설명하면서 "오늘 서울을 출발하기 전에 누가 모은행장 인사문제를 상의해 왔길래 '나는 간섭하지 않는다. 가장 공정하게 처리하라' 고 얘기했다" 고 소개하기도 했다.

간담회 참석자는 대부분 하노이지역 기업인이었지만 호치민지역 기업인 20여명도 초청받아 참석했다.

◇하노이 표정 = 숙소인 대우호텔엔 金대통령 외에도 'ASEAN과 한.중.일 (9+3) 정상회의' 참석국가중 7개국 정상들이 묵어 베트남 군.경의 경비가 삼엄. 참가국 정상들이 모두 공식 의전승용차로 대우자동차의 '체어맨' 을 사용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의장국인 베트남은 이번 회의를 위해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사로부터 승용차를 구입할 계획이었으나 대우자동차가 체어맨 6대를 무상으로 기증하자 이 계획을 취소, 체어맨 7대를 추가로 구입했다는 후문.

◇출국 = 이날 오전 서울공항 (성남)에서 열린 출국행사에서 金대통령은 "베트남과는 과거 한때 불행한 관계가 있었으나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앞으로 경제.문화면에서 양국 협력관계가 크게 진전될 것으로 믿는다" 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양국 국교정상화 후 한국은 베트남에서 많은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는데다 기업들의 투자도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베트남 역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고 설명.

金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겪어보니 아시아 전체가 공동영향을 받고 공동운명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면서 "ASEAN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공동운명.노력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눌 예정" 이라고 강조. 출국 행사는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간소하게 치러졌다.

출국행사장에는 김종필 (金鍾泌) 총리 내외를 비롯, 홍순영 외교통상.김정길 (金正吉) 행정자치.천용택 (千容宅) 국방장관 등 20명 정도 참석.

◇라이 따이한 = 金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한.베트남 2세인 '라이 따이한' 문제가 관심. 라이 따이한은 60.70년대 베트남전 때 파월 한국군 병사들과 베트남 여성들 사이에 태어난 2세들. 金대통령은 라이 따이한 문제를 베트남 정부를 상대로 공식 거론하지는 않을 방침. 베트남측이 이를 '수치스런 과거' 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집계하고 있는 베트남 2세 숫자는 적게는 1천명에서 많게는 2만명에 이를 정도로 정확한 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형편.

그러나 金대통령은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기업체 대표들과 간담회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라이 따이한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 라이 따이한들에 대해 드러나지는 않지만 따뜻한 온정과 관심을 가져달라는 金대통령의 당부의 말이 있을 것이라는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현재 민간차원에서는 지난 95년 서울에서 창립된 '베트남 한인 2세와 함께 가는 모임 (코베트)' 이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퀴논지역을 중심으로 고엽제 환자를 위한 의료봉사활동, 한인 2세들의 합동결혼식 주선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노이 =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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