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알면 더 재밌다] 24. 기록 공인 못받은 '누워 타는 사이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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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동 수단으로서의 사이클은 1492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했고 18세기 후반 실현됐다. 그래서 1896년 제1회 올림픽(아테네) 때부터 정식 종목이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에 비해 기술발전은 더딘 편이다. 더욱 빠른 사이클을 만들려는 시도는 초창기부터 뜨거웠다.

▶ 1910년대 사이클 대회에 등장한 누운 자전거(右).

1913년 누운 자세로 타는 사이클이 나왔다. 이 변형 사이클은 공기저항이 획기적으로 줄어 기존의 사이클이 세운 기록들을 모조리 깼다. 그러자 세계사이클연맹(UCI)이 제동을 걸었다. "사이클은 선수능력 경쟁이지 장비 경쟁이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UCI는 안장 위치 등 장비에 대한 규제를 만들었다.

75년 미국의 체스터 R 카일 박사는 자칭 '인력을 이용한 가장 효율적인 이동수단'을 개발했다. 공기저항에 속수무책인 자전거의 윗부분에 유선형 플라스틱 껍데기를 씌운 것이었다. 이 '껍데기 사이클'의 효능은 속도 실험에 참가한 선수 4명이 기존의 사이클 세계기록을 깨면서 입증됐다. 그러나 UCI는 역시 같은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84년 LA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은 카일 박사를 사이클 대표팀 장비 담당으로 임명했다. 카일 박사는 UCI의 규정을 교묘히 피한 장비를 만들었고, 미국은 "사이클에도 기술 개발을 반영해야 한다"고 로비해 UCI의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등장한 게 원판형 디스크 바퀴다. '같은 크기, 같은 질량, 같은 모양이면 속이 빈 것보다 속이 찬 것이 관성이 크고 잘 구른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옆바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도로경기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벨로드롬에서는 효과를 냈다.

88서울올림픽에서 원판형 디스크는 일반화됐다. 최근엔 상황에 따라 살 바퀴와 디스크 바퀴, 메르세데스 벤츠의 로고 모양처럼 살이 세 개인 바퀴를 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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