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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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6장 두 행상

태호가 파출소로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철규는 난감했다.

순간, 눈 앞이 아찔했다.

물론 끌려갔다 할지라도 당사자끼리 화해하도록 유도될 것이 틀림없고,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서나 받고 훈방될 것은 철규도 짐작할 만하였다.승희에게 먼저 식칼을 들이대고 협박한 것은 그들이었으므로 태호로선 누가 봐도 정당방위였다.

특히 여자에게 칼을 들이대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따지자면 불리한 쪽은 그들이었다.

그러나 철규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든 것은 그런 사건개요에 있지 않았다.

태호의 신상에는 한씨네 일행조차도 알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무작정 파출소로 달려간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파출소까지 달려갈 동안 철규에겐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파출소를 찾아갔는지 자신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침 태호는 파출소 앞에서 연행하려는 경관과 가벼운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태호 자신도 파출소로 끌려가선 안된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 분명했다.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는 순간부터 철규는 달리던 몸을 그대로 날렸다.

그리고 이마에 상처가 나고 건빵바지에 흙이 묻어 있는 위인을 향해 무작정 돌진했다.

감히 파출소 정문 앞에서 패싸움 따위가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의기양양해서 경관을 부추기고 있던 사내는 등뒤로부터 받은 철규의 공격으로 또 다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러나 철규로부터 일격을 당한 사내는 철규가 태호에 비하면 상대할 만한 완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벌떡 일어서면서 철규의 뱃구레를 힘껏 걷어찼다.

태호와 동업자라는 것은 전단 돌릴 때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철규도 생각보단 만만치 않았다.

뱃구레를 걷어차여 비틀하는가 하였더니, 눈 깜짝하는 사이에 눈두덩으로 주먹을 날렸다.

눈에 번갯불이 튀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사내는 몸전체를 투자하여 철규를 덮치고 들었다.

물론 철규는 일같잖게 사내의 몸아래 깔리고 말았고, 이때다 싶었던 사내는 철규의 면상을 본때있게 난타하고 있었다.

누구도 난투극을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의 경관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들에 합세하려고 몸부림치는 태호의 허리춤을 틀어잡고 있는 데도 힘이 부쳤다.

게다가 파출소 앞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인 터라, 행인들도 의미심장하게 생각하고 먼 발치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태호를 놓치면 필경 패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고, 태호를 끝내 붙잡고 있으면 살인이 벌어질 조짐이었다.

사태는 미상불 파출소 간판에 똥칠할 것은 물론이었고, 당번 경관들에게도 가차없는 문책이 내려질 것이었다.

아니래도 신창범을 잡지 못해 시민들로부터 달갑잖은 눈총을 받고 있는 처지에 행상꾼들의 패싸움조차 뜯어말리지 못하는 경찰이라면 그 소중한 면목을 어디가서 찾아낼 수 있을까. 당신은 가! 태호의 귀에 그런 말소리가 들려왔던 것은 그때였다.

뭐라고요? 당신은 가란 말이여. 이 근방에 얼씬거리면 가차없이 폭력배로 긁어서 본서로 넘길거야. 알겠어?

파출소 근처에 얼씬 했다간 봐라, 그땐 무조건 쏴 버릴거야. 우리 요사이 총 잘 쏘는 거 알지? 태호가 저만치 비켜나서야 경관은 흙투성이가 되어 뒹구는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위협과 공갈이 난무한 끝에 가까스로 두 사람을 따로 떼어놓았다.

허리춤을 바짝 죄어 파출소 문안으로 집어넣고 구경꾼들에게 손을 흩뿌리는 경관의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입맛을 다시는 구경꾼들을 내친 뒤 책상 앞으로 돌아선 경관은 자신의 책상을 부서져라 하고 한 번 내려쳐서 기승부리는 두 사람을 당장 제압해 버렸다.

권총을 휘둘러도 눈도 깜짝않던 위인들이 책상 한번 내려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당장 기가 질려 움츠러드는 것은 도대체 모를 일이었다.

경관은 서랍을 거칠게 열어 진술조서 양식을 꺼낸 뒤 철규를 턱짓하며 소리질렀다.

"당신부터 주민등록증 내놔.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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