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명, 그녀가 미국서 키워낸 한국미술사 석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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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를 공부하려면 한·중·일 3개 국어를 해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다.” 부르글린트 융만 UCLA 교수의 결론이다. 넓은 시야로 한국 미술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종택 기자]

미국에 사는 독일인 부르글린트 융만(55) UCLA 교수에게도 가끔 향수(鄕愁)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아이의 손을 잡고 들르는 곳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이다. 한국인 뺨치게 한식을 즐기는 그는 김치는 묵은지, 고추는 청양고추를 먹는다.

융만 교수는 UCLA에서 10년째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미국 최초의 한국 미술사 교수로 기록된 그는 “당시 미국에는 중국·일본 외 한국 미술사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첫발을 디딘 이후 현재까지 약 600명의 한국 미술사 석사를 배출했다. 그에게 한국은 연구 주제일 뿐 아니라 평생의 사랑이다.

◆작은 도시에서 꾼 큰 꿈=첫 한국 방문은 1973년, 19세 때였다. 그는 “폭넓은 관심사가 나를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데려갔다”고 설명했다. 큼직한 꿈을 꾸게 만든 건 좁은 도시다.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힐데스하임이 고향인 융만 교수는 “바깥 세상을 만날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호기심이 왕성해졌다”고 기억했다. 독일과 유럽의 문화 만을 보고 배우던 그는 “아시아 문화가 일종의 대안으로 보였다”고 덧붙였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환 학생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어는 물론, 동양화와 서예 등을 배우는 데 1년 반을 쏟았다. 한반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태권도까지 ‘흡수’하기 위해 6년 후 한국을 다시 찾았다. 83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한국 미술사를 공부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연구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풍경, 사람들, 그들의 행동 모든 것이 마치 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그는 한국의 정에 녹았고,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동양 미술사 박사 학위를 땄다. 일본에서 6년을 머물렀고, 대만에서 중국학을 공부한 경험도 있지만 결국 한국 미술을 선택했다. “실용성과 기품의 공존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도자기는 중국의 그것처럼 예술적 완벽성에만 기대기 보다는 실제로 쓸 수 있게 하는 데도 주력한다”는 것. 여기에 다른 나라의 미술과 교류한 흔적이 남아있는 점을 한국 미술의 매력으로 꼽는다.

◆역사적 맥락 연구 중시=한·중·일 3개국어에 능숙한 그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한국 미술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미술사는 유난히 ‘문맥’ 연구가 부족한 편”이라는 것이다. 조선통신사가 한국 회화에 미친 영향과 산수화를 둘러싼 한·일 간의 교류 등을 그가 연구하는 까닭이다.

그는 올 6월 말 한국에 들어와 7주를 보냈다. 고려대학교 ‘서머 스쿨’에서 한국 미술사를 강의했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회화 자료를 찾았다. 그가 무엇보다 중점을 둔 것은 한국의 도예가들을 만난 일이었다. 내년 8월 UCLA 미술관에서 직접 큐레이팅할 전시의 참여 작가들이다. 융만 교수는 “한국에서 기획해 ‘수출’하는 형식이 아닌, 미국에서 기획해 열린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며 이 도예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그의 여름은 늘 바쁘다. 해마다 한국을 찾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을 전공하고 90년대 초반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도 했던 남편과 함께 오기도 한다. “독일에도 일년에 한번씩은 꼭 가려고한다”는 부부의 마음이 아무래도 한국 쪽에 기울어있는 듯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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