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발전·송전·배전분리 재고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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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정부는 한전 (韓電) 의 민영화방침을 결정하고 발전.송전.배전을 각각 분리해 국내외 기업이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여론수렴을 위해 공청회도 개최했는데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영화 취지는 경쟁력 강화를 통한 경영효율 극대화와 국내 민자 (民資) 와 외자유치를 통한 소요자금 조달의 원활화란 설명이다.

한 나라의 전력산업은 순수한 수지타산이나 일시적 자금조달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을 수 없는 주요한 국가기간산업이고 전략산업인 동시에 안보산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필자는 정부의 전력산업정책은 전체적인 국가이익과 국가안보차원에서 검토되고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발전.송전.배전을 각각 분리시켜 3개의 독립된 회사가 각 부문을 담당해 온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조선전기주식회사.남선전기주식회사 및 경성 (京城) 전기주식회사가 각각 이 세 부문을 전담해 오다 여러가지 문제가 많이 발생해 마침내 발전.송전.배전사업을 통합, 한국전력공사를 발족시켜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오늘의 한전은 세계에서도 가장 발전단가가 싼 전력회사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중에서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이 신용평가를 가장 높게 한 회사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돈을 빌려올 수 있는 몇 안되는 한국기업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회사를 옛날처럼 발전.송전.배전의 3개 부문으로 분할해 민영화하겠다는 발상은 규모의 경제성, 범위의 경제성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도 발전.송전.배전을 통합시킨 종합전력회사 시스템을 갖고 있다.

영국처럼 우리도 발전.송전.배전을 분리해 전력산업을 이끌어 오다 3개 부문을 통합해 한국전력공사로 발족시킨 이유를 재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발전.송전.배전부문의 분리독립과 민영화 (외국인 소유 포함)가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민영화는 참여기업의 영리성 추구가 국가이익이라는 공익성에 우선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높은 투자보수율 (ROI) 을 요구하고 높은 판매단가를 책정할 확률이 높다.

한화그룹의 발전소를 미국기업에 매각하기로 쌍방이 합의를 봤다가 마지막 순간에 결렬된 것은 높은 투자보수율 보장과 자기들의 전력을 높은 가격으로 한전이 무조건 사줄 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다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이 사례는 한전 민영화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둘째, 전력산업은 발전.송전.배전 모두, 특히 그중에서도 발전은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데 막대한 소요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국내외에서 조달한 거대한 자금의 원리금을 어떻게 상환해 갈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셋째, 자금차입 대신 주식참여 (equity participation) 를 통해 1백% 직접투자로 국내외기업이 참여한다면 반드시 일정한 투자보수율의 보장과 높은 판매단가를 요구해 국내기업과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기를 사 써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넷째, 국내전력 수요예측에 따르면 2000년까지 4천9백87만㎾의 전력공급이 필요하나 2015년에는 8천83만㎾의 전력공급이 필요하다.

이중에서 원자력발전 비중은 2000년의 27.5% (1천3백72만㎾)가 2015년엔 34.2% (2천7백65만㎾) 로 증대되는데 1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는 평균 10년 내외의 기간이 소요된다.

한편 변전소도 97년말 3백71개소에서 2015년에는 8백34개소로 (2.2배) 늘어나야 하는데 엄청난 변전소시설투자가 요청되고 있다.

송전회로도 97년의 2만1천5백39C-㎞에서 2015년에는 3만8천7백58C-㎞로 늘어나야 한다.

전력은 국가의 혈액과 같고, 송배전시설은 혈관과 같기 때문에 발전과 송배전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위험하다.

주택용은 물론 산업용.군수용 및 농업용 전력요금은 저렴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당국은 발전.송전.배전의 분할과 전력산업 민영화방침을 재검토해주기 바란다.

김동기(고려대 경영학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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