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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뉴스] 보은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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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절망보다 막막했던 남중국해
낡은 5t 어선
바닥에서 솟구치던 바닷물.

우리 곁을 지나쳐간
숱한 배의 침묵 속에
살이 문드러지는 피부염보다
더 빨리 번지던
죽음의 공포.

식량과 식수는 이미 바닥났고
캄캄한 어창 속에서
생선처럼 갇혀 지내던 날들.

남녀가 용변을 함께 해결해도
뱃멀미만큼 밀려오던
두려움 앞에서
수치심은
차라리 사치스러웠다.

물을 퍼낼
기력마저 쇠잔하고
도저히 살 수 없어
두고 떠난 공산치하 조국이
달콤한 유혹이 될 때
우리에게 큰 빛으로 다가온
'광명 27호'.

그렇게 살아난
우리 베트남 난민 96명에
선원 24명 보탠 120명 식구가
그날부터 먹던 한솥밥.
작은 밥솥이 쉴 틈이 없었던
열이틀간의 항해.

그렇게 도착한 따이한.
1년 뒤 각자 살 길 찾아
다른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분을
어찌 하루도 잊은 날이 있으랴.

한번 뿌린 증오는
피눈물로 돌아오지만
한번 베푼 사랑은
몇곱으로 되갚는 법.

20년 전
한국의 한 원양어선 선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세상 사는 이치라네.

*1985년 한국의 원양어선에 구조돼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 보트피플 96명이 당시 선장이던 전제용(64.경남 통영시 거주)씨를 지난 5일 LA로 초청해 보은행사를 열었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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