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면담 효과’ 어떤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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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6일 오찬 회동으로 남북관계에도 훈풍이 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한 방북 기간 중 장기 억류됐던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가 석방되자 미국 여기자를 송환시킨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과 같은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도 쏟아진다. 민간 트랙에서 남북관계의 숨통을 틔우도록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현 회장에게 힘을 보태줌으로써 현대의 대북사업은 탄력을 받게 됐다.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한 당국 간 대화 채널이 가동될 수 있다.

정부 당국은 김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지켜본 뒤 현 회장을 만나려고 그동안 면담 일정을 늦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방 현지지도를 이유로 현 회장을 속 타게 하면서 남측의 분위기를 살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의 귀환 편에 대남 메시지를 보낼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김정일과의 한 차례 만남으로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남북 간에 쌓인 앙금을 한꺼번에 털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1월 북한군 총참모부는 “대남 전면 대결 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 핵 실험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고, 국민들의 대북 감정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지난달 30일에는 북한 수역에 잘못 들어간 연안호 선원 4명이 억류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도발행위를 김정일과의 면담 한 차례로 모두 덮어버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 근로자 유씨를 지난 13일 풀어준 데 이어 연안호 선원 송환 조치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냉정히 보면 원상 회복 수준에 불과한 것 아니냐”며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을 주는 건 생각하기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5월 핵 실험 이후 탄력을 받은 대북 제재 국면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유씨 석방에 뒤이은 김 위원장의 현 회장 면담은 미국에도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핵 개발 프로그램의 즉각적 중단과 불가역적인 폐기 같은 근본적 태도 변화를 요구해 왔다. 한 당국자는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에 막혀 버티기 힘든 상황이란 걸 알고 있다”며 “6자회담 복귀 등 전향적 조치가 없는 한 의미 있는 북·미 대화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김양건은=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71세의 고령이지만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최고 실세로 꼽힌다. 16일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직을 겸임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이 위원회는 현대그룹의 북측 사업파트너 역할을 맡고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방북 당시 정상회담에 배석했으며 이후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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