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파 vs 후쿠다파 3차 전쟁 불붙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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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72년 7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의원이 치열하게 맞붙어 다나카가 승리했다. 두 사람의 한자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와 ‘가쿠후쿠(角福) 전쟁’으로 불린 이 싸움에서 이긴 다나카는 일본 총리가 됐다.

이 싸움은 이후 일본 정치를 움직인 흐름의 시작이었다. 다나카가 불법 정치헌금 사건인 ‘록히드 사건’으로 물러나고 후쿠다가 76년 총리가 된 적은 있으나, 다나카파는 잇따라 총리를 배출한 최대 파벌로 성장했다. 다나카에게서 직접 정치를 배운 사람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현 민주당 대표대행이다. 다나카의 총애를 받아 ‘자민당의 황태자’로 불리며 자민당을 좌지우지했다. 그는 93년 미야자와(宮澤) 내각이 해산된 후 내부 권력 투쟁 끝에 탈당하기 전까지는 다나카파의 확실한 총리 후보였다.

다나카파와 후쿠다파의 상황은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등장으로 역전되기 시작했다. 2001년 총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는 당내 후쿠다파의 힘을 극대화시켰다. 후쿠다 다케오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던 고이즈미는 2005년 우정성(우체국) 민영화를 외치며 중의원을 해산했다. 우정성 민영화에는 다나카파를 지원해온 우정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계산도 담겨 있었다.

다나카의 딸인 마키코(眞紀子)가 민주당에 입당함으로써 ‘가쿠후쿠’ 전쟁은 이제 정권을 향한 정당 싸움으로 확대됐다. 오자와는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해 당시 아베 총리를 몰아내고, 후임 후쿠다 총리와는 한바탕 여야 전쟁을 치른 끝에 사퇴시킨 경험이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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