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첨단과학 동원 위인들 '과거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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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미국에서 최첨단 과학을 활용해 역사적 인물들의 숨겨진 과거를 찾는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흑인 여자노예와의 사이에 후손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전 유전자 감식에 의해 밝혀진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28일자 관련 특집에서 이를 '타블로이드 역사학' (유명인의 스캔들을 캐는 데 관심이 많은 타블로이드 신문에 비유한 말) 이라고 명명했다.

매거진은 현재 진행중인 주요 연구사안을 소개하면서, 이런 연구는 흥미로울지는 모르나 사자 (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은 물론 해당 위인들의 업적을 퇴색시킬 가능성까지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악성 (樂聖) 베토벤 (1770~1827) 의 머리카락 성분을 화학적으로 분석, 그가 생전에 매독에 걸렸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다.

베토벤이 홍등가를 습관적으로 드나들어 매독에 걸렸으며, 이로 인해 귀까지 멀었다는 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겠다는 것이다.

당시 가장 보편적인 매독치료제는 수은이었으므로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다량의 수은성분이 검출되면 맞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와 함께 머리카락에 묻어 있는 두피조직의 DNA 분석으로 천재의 유전자 정보를 알아내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이 연구는 미 베토벤학회와 애리조나주의 비뇨기과의사 알프레도 게바라가 수년전 경매에서 사들인 베토벤의 머리카락 5백82올을 바탕으로 샌호제이 주립대 등 몇 군데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 (1830~86) 이 생전에 남긴 편지에서 특정 문구 (文句)가 말소된 흔적을 첨단 광학장비와 적외선 탐지기로 찾아내 그녀가 올케와 40년간 레스비언 관계를 유지했음을 밝혀내려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이 연구는 메릴랜드대의 영문학교수인 마사 스미스의 주도로 버지니아대 인간속성 (屬性) 공학연구소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도 비정상적 성관계 여부와 관련,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1797~1828.동성애) ▶영국의 시인.비평가 매슈 아놀드 (1822~88.근친상간)▶영국의 계관시인 앨프리드 테니슨 (1809~92.동성애) 등에 대한 과거 캐내기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미국의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 (1774~1809) 의 사인 (死因) 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을 밝혀내려는 연구도 추진되고 있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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