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공동체 위한 고위급 회의 설치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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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04면

“남북관계를 근원적으로 처방해보자는 뜻을 담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담긴 대북 제안의 의미를 청와대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15일 대북 제안은 ‘새로운 평화 구상’과 ‘재래식 무기 감축 제안’의 두 축으로 돼 있다.

이 대통령 8·15 경축사 남북 문제

‘새로운 평화 구상’은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 적극 실행 ▶남북 경제 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 설치 ▶관련국 및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한 경제·교육·재정·인프라·생활향상 분야에 걸친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 추진 등이다. 고위급 회의 설치와 5대 프로젝트 등은 진전된 언급이지만 핵심은 ‘핵 폐기를 전제로’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제시한 ‘비핵·개방 3000 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구상은 남북이 비핵화 이후를 대비해 경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생각을 담은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인도적 지원보다 경제 개발을 바란다’는 북의 속내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속내’는 특별한 의견 교환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을 방문하는 민간 NGO 등을 통해 일관되게 전달돼 온 북한의 메시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석방은 ‘북한의 부당한 억류로 잘못됐던 남북관계가 바로잡힌 것’일 뿐으로 8·15 제안과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했다.

구상의 이행 시기가 ‘북한이 핵 포기 결심을 보여줄 때’로 규정된 것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6자회담과 국제협력의 진전에 따라 실질적인 대북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본격 추진한다”고 했다. 당시는 북핵 6자회담 2·13 합의 틀에 따라 핵시설 불능화가 진행 중이던 때여서 시기가 그렇게 맞춰졌다.

재래식 무기 감축 제안엔 북한의 ‘통미봉남’에 대한 대응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중 대통령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10년을 거치면서 북한과 교류협력은 심화됐지만 군사적 신뢰 구축이 없었기 때문에 실질 평화는 구축되지 못했다”며 “이 문제에 근본 처방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핵 문제 해결을 ‘미·북 문제’로 돌리고 남한을 배제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 간에도 논의해야 할 정치·군사적 의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재래식 무기 감축도 당장 100만 명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대화가 되겠느냐. 그러지 말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불과 4㎞를 사이에 두고 이토록 중화기와 병력을 반세기 이상 집중시키고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눈앞에서 총부리를 겨누면서 어떻게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말할 수 있겠나”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깊은 뜻’을 북한이 받아들이겠느냐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이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상 안 한다”며 “우리로서는 지향해야 할 포인트를 밝힌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우리의 기본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버릇 나쁜 아이가 아닌 정상적이며 당당한 상대로 생각하고 진짜로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의 입장 천명’에 방점이 있기 때문에 북에는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북이 집중하는 ‘6·15, 10·4 선언의 이행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대통령과 통일부 모두 여러 차례 언급하고 강조한 만큼 더 거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는 그러나 “북으로서는 ‘제안의 진정성’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또 ‘체제 보장이 선행돼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북의 입장에 변화가 없는 현재로선 포기를 전제한 ‘한반도 신평화 구상’의 실현 전망은 낮아 보인다. 다만 김 교수는 “미·북 간에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패키지 논의가 진전되면 신평화 구상의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군축 논의도 북한이 2009년 1월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남북 간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된 모든 합의사항을 무효화한다”는 식으로 거칠게 나왔고 이를 철회하지도 않은 상태여서 당장 긍정적 반응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김 교수와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안보통일연구부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와 남북 긴장이 높아졌는데 그런 가운데 군축 얘기가 나온 것은 전향적”이라고 평가했다.



경축사 키워드 | 대북 제안
“ 북한이 핵포기 결심을 보여준다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 구상을 추진할 것입니다.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실행할 것입니다.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를 설치하고 관련국 및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경제·교육·재정·인프라·생활향상 분야에 걸친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입니다…한반도의 비핵화와 함께 남북 간 재래식 무기의 감축도 논의해야 합니다… 눈앞에서 총부리를 겨누면서 어떻게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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