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가족을 슬프게 하는 것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7호 34면

세 아이를 둔 다둥이 가족이 강원도의 한 자연휴양림으로 휴가를 떠났다. 로또만큼 어렵다는 인터넷 추첨에서 당첨돼 나선 길이었다. 숙소가 4인실이었지만 어른 둘, 아이 셋이니 크게 비좁진 않을 듯했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숲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상쾌한 공기, 수정 같은 물이 흐르는 계곡, 밤하늘의 별까지…. 번잡한 도시에서 잊고 지냈던 자연의 싱그러움이 아이들을 들뜨게 했다.

나현철 칼럼

하지만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닥쳤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딱 네 벌씩이었다. ‘4인실이니까’라는 생각에 다섯 살 막내에게 숟가락을 쥐여주고 아빠가 젓가락을 들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마당 한쪽에 마련된 바비큐장에서 숯불에 구워먹는 삼겹살은 꿀맛이었다. 몇 시간 뒤 이부자리를 펴기 위해 이불장을 열었을 때 또 난관이 찾아왔다. 베개가 4개, 깔고 덮는 이불이 각각 2개씩이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베개와 요 하나를 더 달라고 했지만 여분이 없다고 했다. 4인실은 정말 ‘네 명까지만 묵을 수 있는 곳’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5인실을 늘리지 못하면 비품이라도 여유 있게 구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맨바닥에서 자는 아빠의 머릿속을 맴돌았다(휴양림마다 있는 수십 개의 숙소는 4인실이 대부분이다. 5인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어 당첨되기가 훨씬 어렵다).

다음 날 아침 가족은 일찌감치 근처 물놀이장을 찾았다. 성수기여서인지 종일 이용권이 어른 6만5000원, 어린이는 4만8500원이나 했다. 아빠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놀이공원과 물놀이장 입장 때 동반가족까지 할인을 받는 카드였다. 그러나 막내는 할인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 카드가 동반가족 세 명까지만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비장의 무기’가 보호할 수 있는 범위는 ‘4인 가족’까지였다.

애들이 너무 적다고, 아이를 안 낳는다고 난리다.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 게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10년을 훌쩍 넘겼다. 1960년대 6명이던 출산율이 지난해 1.19명으로 떨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경제의 중추인 30~40대 인구는 이미 2006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래는 더 암울하다. 유엔이 최근 추산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3명이다. 세계 평균인 2.56명의 절반에 못 미치고 선진국 평균(1.64명)에도 한참 밑돈다. 이대로 가면 한국 인구는 2018년을 정점으로 줄어들어 2050년엔 4234만 명이 된다. 경제ㆍ복지ㆍ국방 등 모든 면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오죽하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북한 핵보다 저출산이 더 무섭다”라는 말까지 했을까.

정부라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셋째 아이부터 유아 보육료를 지원하고 출산장려금을 주는 정책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다자녀 가구는 연말정산 때 자녀가 적은 집보다 세금을 더 많이 돌려받는다. 한국전력은 지난달부터 6인 이상 대가족에 적용해온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세분화해 다자녀 가구에 추가 할인을 해주고 있다. 다자녀 가구엔 고마운 일이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대부분 금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70년대 ‘가족계획 시대’ 이후 굳어진, 저출산을 우대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복지혜택으로 제공하는 학자금 지원만 해도 그렇다. 5대 그룹에 드는 대기업에서마저 아직 ‘자녀 2인’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는 곳이 적지 않다.

몇 년 전 서울 시내버스엔 ‘6세 이하 동반 승객에 대한 요금 고지’란 안내문이 나붙었다. 성인 1명당 6세 이하 어린이 한 명만 요금이 면제되므로 두 명 이상을 데리고 타면 추가요금을 받겠다는 거였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서울시가 나서 없던 일로 했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안내문의 근거가 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조다. 이 조항대로라면, 지금도 부모가 6세 이하 세 자녀를 데리고 타면 여전히 한 명에 대한 어린이 요금을 내야 한다.

서울시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한 은행과 손잡고 내놓은 ‘다둥이 카드’에도 아쉬움이 많다. 이 카드는 놀이공원 자유입장권에 대해 본인 50% 할인 혜택을 준다. 있으나 마나 한 혜택이다. 웬만한 제휴카드는 일년 내내 본인은 50%까지, 동반 3인까지 20% 할인을 해준다. 다자녀 우대 카드로 결제했다간 돈만 더 내기 십상이다. 흔한 해외여행 경품도 다자녀 가구엔 부담이 된다.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를 지원한다지만 모두가 ‘4인 가족’ 기준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