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한국학
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288쪽,
1만9800원
그 예민한 사안에 웬 한가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지난 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지켜 보며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죽음의 비극적 성격 때문에 장례의 형식·절차를 따질 상황은 아니었지만,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치러진 국가적 장례라면 뭔가 한국적인 전통 의례를 보여줄 순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조선은 왕조의 의례를 그림까지 그려 자세히 남겼다. 1800년 정조의 장례는 『국장도감의궤』에 상세하다. 장례 행렬 그림만 40쪽에 달하며 1440명이 등장한다. 말을 타고 선두에 선 이가 경기감사. 장지가 화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상복을 입은 고관들이 따르며, 정복 군인 400명이 소총을 들고 호위하며, 다양한 깃발·악대·의장물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직함을 명기한 공식 장례 인원만 1440명일 뿐, 보통 국상 행렬엔 1만 명의 대인원이 참여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원장 김영식)이 낸 이 책은 조선 국왕의 일생을 통해 우리가 잊어버린 그 시대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왕자의 태교에서부터 ▶왕의 하루 일과 ▶궁궐 여러 건물들의 의미 ▶궁중 여인들의 삶 ▶왕실 행차 ▶임금의 먹거리 ▶장례절차까지 다양한 삶의 면모를 담았다.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왕세자도 일반 학동들처럼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았다. 성적은 ▶통(通·우수) ▶략(略·미흡하나 통과) ▶조(粗·부족하다) ▶불(不·낙제)의 4등급. 이를 새긴 나무판 성적표가 ‘강경패(講經牌)’다. 왕세자에게 실제로 ‘불’을 매긴 사례는 없었 다고 한다. [고려대박물관 제공]
◆통치는 식치(食治)=세조는 음식으로 병을 사전에 다스리는 ‘식의(食醫)’를 으뜸으로 쳤다. 절대 군주에게 있어 통치는 곧 그 자신의 식치(食治)에서 출발한다. 특이한 궁중식 건강요리 중엔 ▶사람의 젖 ▶말똥을 말려 만든 차(마통차) ▶사슴꼬리 요리 등도 있었다. 또 먹는 것은 성리학적 자기 절제와도 연관된다. 비만은 ‘무절제’라는 도덕적 결함으로까지 여겨졌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굶겨 죽인 비극 이면에는 강마른 임금과 비만한 세자의 도덕적 대립이 숨어 있다는 해석까지 있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