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조작 기술 '비윤리적'논란속 질병퇴치 부푼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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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소와 사람의 세포를 하나로 합하는가 하면, 특정 장기만을 유도해낼 수 있는 세포를 키우는 등 인간의 생명조작기술이 '눈부신' 발달을 거듭하고 있다.

80년대 중반 꽃을 피우기 시작한 분자생물학의 발달이 직접적인 이유. 그러나 한편에서는 상품성과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치열한 본능이 생명조작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생명조작 그 끝이 어딘지 조명해 본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수의대부속 동물병원 205호. 이곳에선 현재 국내 초유의 실험이 진행 중이다.

사람의 심장을 가진 돼지를 만드는 것. 올 여름 시작된 이 실험의 구체적인 진행상황은 연구 관계자들 외에는 일급비밀. 실험책임자는 서울대 서정선 (의대).황우석 (수의대) 교수 두 사람이다.

황교수는 국내 처음으로 소의 체세포를 이용해 임신을 시도한 학자. 서교수는 세계 처음으로 당뇨유발 생쥐를 만들어 국제특허까지 획득한 생명공학 분야의 대가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현재 사람의 심장 형성에 관계된 유전자를 찾는 단계일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황교수는 "사람의 완전복제나 사람과 비슷한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은 윤리논쟁의 소지가 있다" 라고 전제한 뒤, "더구나 이들에게서 특정 장기 만을 얻는 것은 분명 비윤리적인 행위" 라고 못박았다.

대덕단지내 한국과학기술원 자연과학동 2층. 복도에 빽빽히 들어선 실험용 냉장고 일부에는 인간의 조혈모세포자극인자 (G - CSF) 유전자가 따로 추출돼 보관되고 있다.

이 유전자는 바로 올해 초 탄생한 '메디' 라는 흑염소의 유전자에 삽입된 것과 똑같은 것. 제2.제3의 메디를 만들기 위해 이 학교의 유욱준교수팀이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는 유전자들이다.

"사람의 유전자를 흑염소에 집어 넣는다는데 전혀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설령 만에 하나라도 이런 기술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 이 실험에 쭉 참가해온 박사과정 고정호씨의 말이다. 왓슨과 크릭이 유전의 핵심물질인 DNA의 구조를 처음 보고한 것은 53년. 생명조작은 이후 꾸준히 발전해 지금은 학자들마저 미래를 점치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기술발달의 갈래를 요약하면 ▶특정 동물의 염색체를 통째로 다른 동물의 수정란에 집어넣거나 ▶특정 유전자만을 이식하는 두 부류. G - CSF 관련 유전자만을 흑염소에 이식한 사례는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대장균을 필두로 미생물학 쪽에서 기초 기술이 많이 축적됐다.

전자에는 소나 양의 수정란에 사람의 염색체가 담긴 핵을 집어넣는 등의 기술이 속한다.

서울대 황교수는 "향후 생명조작의 최첨단은 동물을 이용해 특정 장기를 생산하는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한다.

신장.심장.안구 등 장기 이식은 암.성인병 등 각종 질병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또 인간 대신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므로 윤리적 비난의 소지도 적다.

미국의 유전공학회사 ACT가 최근 소의 수정란에 사람의 핵을 심어 키우는 것도 '동물에서 인간 장기 얻기' 의 예비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른 시일 안에 이런 것들이 이뤄지기는 힘들듯. 장기 생성의 경우 수많은 유전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루듯 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성취된다면 인간은 신만의 권한이었던 '생명창조술' 을 거의 습득한 셈이 된다.

이는 생명을 놓고 상상해볼 수 있는 온갖 '장난' 또한 가능하다는 의미. 이런 점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은 최근 미국립생명윤리위원회에 보낸 서한은 생명조작 허용 한계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클린턴은 서한에서 이렇게 밝혔다.

"인간과 동물의 뒤섞으려는 시도는 우려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간 (幹) 세포만을 조작 장기를 만드는 시도는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

김창엽.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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