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대한변리사회 회장 “세계는 치열한 특허전쟁 중 밀리면 지식 식민지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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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계는 특허 전쟁에 돌입한 지 오래지요. 여기서 기업이 휘청하면 국가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특허전쟁은 지식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경제전쟁의 역사가 단지 영토전쟁에서 특허전쟁으로 변화한 것으로 봐야지요”

대한변리사회 이상희(71·전 과기처 장관·사진) 회장은 식민지라는 개념이 과거에는 ‘영토 식민지’였지만 미래는 ‘지식 식민지’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지적재산권 보호, 과학기술 입국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허 방위군’ 격인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특허침해 소송을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를 만나 한국이 특허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과제와 전망을 들어봤다.

-한국은 특허 강국이다.

“맞다. 한국은 특허 출원 건수 면에서 보면 세계 4위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는 세계 5위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의 지식재산 수입도 위상에 걸맞게 많아야 하는데 사정은 정반대다. 2006년 기준 미국은 753억 달러, 일본은 204억 달러인데 우리나라는 고작 19억 달러다. 초라한 성적표의 원인 중 하나는 국가의 지식전쟁 즉, 특허전쟁에 대한 국가체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다.”

-국가 지식재산전쟁체계 문제점은.

“외국에서 국내 특허를 침해하는 것을 막고, 외국이 국내 업체에 특허 침해 소송을 하면 방어를 잘해야 한다. 특허를 많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허라는 무기를 공격과 방어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전략체제가 안 갖춰졌다는 의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특허소송 전문법원 체제 도입과 동시에 소송 전문가인 변호사와 특허 전문가인 변리사가 공동 전선을 펼쳐야 한다. 우리는 변호사만이 특허침해소송을 맡을 수 있다. 일본은 이미 이 같은 공동 ‘전시 체제’를 완비했다. 첨단 전쟁에는 육군 격인 변호사가 필수적이지만 공군 격인 변리사가 없이는 전쟁에서 패배하기 십상이다. ”

-변호사 중에는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해받는다며 반대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변호사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모든 특허침해소송에 변호사는 필수이고, 변리사는 소송의뢰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선택인데 변호사들이 무엇을 잃는다 말인가. 이 소송에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나서면 국제적으로도 소송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중국·일본 등 동북아 지역의 특허침해소송도 한국으로 몰려와 되레 일거리가 늘어날 것이다. 유럽 여러 국가의 특허침해 소송의 70%가 독일로 몰리는 것이 좋은 예다.”

-특허침해 소송을 놓고 변호사와 변리사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넓게는 지식전쟁을, 좁게는 특허전쟁을 대비한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봐야 한다.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에서 주도한 주광덕 의원과 최연희 의원이 변호사 출신이다. 법 개정안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적극 지원한 것이다. ”

-일부에서는 이공계 출신 변호사를 배출할 로스쿨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는데.

“특허소송의 첨단기술 분야는 일반 소송분야와 다르다. 화살에서 미사일까지 급속한 기술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때문에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한 변호사라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주장이라면 노련한 전투조종사는 배제하고 신참 조종사를 전투에 투입하겠다는 전략과 마찬가지 아닌가. ”

-국가의 지식재산 전쟁체계를 만드는 데 변호사와 변리사만 나서서 되겠나.

“어떤 형태든 국가 간 전쟁의 최고 통치권자는 대통령이다. 뒤늦게나마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대통령을 지식재산위원장으로 하는 지식재산기본법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 이 위원회의 많은 활약이 기대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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