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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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월 8일부터 시작하기로 한 경제청문회는 지난 1년간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 온 한국의 서민들에게는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경제대란 (大亂) 을 초래한 직.간접적인 원인과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점들을 조명 (照明) 하고 관련된 정책 담당자들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우리나라가 다시는 이러한 국난 (國難) 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이다.

청문회에서 여러가지 설명이 제시되겠지만 우리는 이 기회에 이웃 대만의 성공적인 위기 극복의 비결을 상고 (相考) 할 필요가 있다.

21세기는 태평양 시대가 될 것이라는 벅찬 기대를 가졌던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이 지난해부터 시작된 IMF 환란으로 모두들 위축되고 있지만 유일하게 대만만은 올해에도 5%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피해 나가고 있다.

2천2백만인구의 대만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8백5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자랑하고 있으며 해외 빚은 겨우 2억5천만달러로 세계에서 제일 낮은 채무국중 하나가 됐다.

거의 5백%에 가까운 부채비율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기업들과는 달리 대만 회사들은 겨우 30% 정도의 부채비율로 건실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은행들의 불량여신은 전체 은행 자산의 1.5%로 선진국 은행들보다 오히려 더 건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대만 경제의 성공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상이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째, 중소기업이 전체 회사수의 98.5%를 차지하고 전체 고용인구의 80%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등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

따라서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 시장의 동향에 민감하고 업종선택에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대기업에 흔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의존이 없고 자체의 현금흐름 (cash flow) 과 채산성에 회사의 운명을 거는 경영을 했지 자산 불리기와 시장점유율에 집착하지 않았다.

둘째, 중소기업에 까다로운 은행대출에 매달리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자기자본에 의지하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큰 빚을 지지 않고 낮은 부채비율을 유지해 왔다.

반면에 국영회사 중심의 중국대륙 기업들은 역시 국가소유인 은행들로부터 너무 수월하게 자금을 대여받아 왔기 때문에 부채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6백%에 육박하고 있으며, 채산성은 날로 악화돼 78년 덩샤오핑 (鄧小平) 개혁 이후 20년 동안에 국영기업들의 손실이 정부 공식통계로만도 20배가 늘어나 지난해에 1백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실제 손실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은행들의 부실자산은 국내총생산 (GDP) 의 40%에 달해 실질적인 파산상태에 처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데도 대만 경제가 견실한 가장 큰 이유는 96년 중국의 대만 해역에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대만 국민들이 항상 외부의 위협에 대한 긴장감을 풀지 않고 위기의식을 갖고 내실 (內實) 있는 경제발전을 도모했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에 의하면 세계문명의 발상지였던 나일강 삼각주와 티그리스 및 유프라테스강, 중국의 황하 유역들은 4천~5천년 전에는 기름진 옥토였기보다는 잦은 홍수와 쓸모없는 갈대밭으로 그 곳 주민들에게는 여러가지 악조건의 황무지였으나 그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려는 피나는 노력 때문에 결국에는 찬란한 고대문명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것이 토인비 교수의 유명한 '도전과 응전 (Challenge and Response)' 이론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잘 나가던 우리 경제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 우리 국민들이 갑자기 긴장을 풀고 자기도취에 빠져 오만해지고 초일류병에 빠져 해외 관광이나 하면서 허세를 부린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IMF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다.

우리가 오늘의 경제대란을 참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의 정신상태를 개조 (改造) 할 필요가 있다.

온 국민이 오만과 허세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위기의식을 갖고 허리띠를 다시 조르며 국가재건에 임할 때에야 우리에게도 제2건국의 희망이 있을 것이다.

박윤식(미국 조지워싱턴대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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