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촌 주부들의 신선한 김장김치 즐기는 요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눈 내리는 저녁, 마당 한켠에 깊이 묻어 둔 항아리에서 한 포기씩 꺼내 먹는 시원한 김장김치 맛 - .

하지만 주거환경이 바뀌고 식구수가 줄면서 제철 배추와 젓갈로도 그 맛을 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김장을 포기하지 않은 아파트촌 주부들의 김장 요령을 알아본다.

◇ 양과 시기를 조절하라 = 여러 종류의 김치를 조금씩 나눠 담가 김장 '티' 는 내면서도 한꺼번에 힘을 들이지 않고 다양한 김장김치를 맛보는 가정이 늘고 있다.

주부 심미숙(49.서울서초구서초4동)씨는 11월 중순이면 기본 양념재료인 마늘.생강.고춧가루.젓갈 등을 일괄구입해 다질 것은 다져두며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장에 나오는 갓김치와 파김치부터 담그기 시작, 총각김치와 동치미.배추김치의 순으로 보름에 걸쳐 3~4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근다. 김장용 배추가 끝물이 되는 12월10일쯤 배추김치만 조금 더 담그는 것으로 김장 순례는 끝. 이 때는 젓갈도 새우젓, 특히 육젓 한 가지로만 짜게 양념해 두면 겨우내 먹을 수 있단다.

◇ 배추를 절일 땐 = 좁은 실내에서 김장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이 배추 절이기. 대개 욕조를 사용하지만 화장실에 붙어 있어 기분이 개운치 않다. 또 겨우 절여 놓아도 간이 고루 배도록 뒤집으려면 여간 번거롭지 않다.

최근 아파트촌 주부들은 소매상에 아예 소금에 절인 배추를 주문, 수고비나 소금값을 얹어 사기도 한다. 인근 야채가게간에 경쟁이 심한 지역에선 일반 배추값에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주부 정경순(46.경기도성남시분당구서현동)씨는 수 년 전 이웃 할머니에게서 커다란 비닐자루 이용법을 배워 활용하고 있다. 지물포에서 폭이 60~80㎝쯤 되는 약간 두꺼운 투명비닐자루를 사서 물이 새지 않도록 한쪽을 고무줄로 단단히 동여맨다.

그 속에 소금을 뿌린 배추를 넣은 뒤 나머지 한쪽을 묶어 욕조나 베란다에 눕혀 놓는다. 배추를 뒤집을 때도 다시 꺼낼 필요 없이 비닐자루를 통째로 굴리면 골고루 간이 밴다. 또 사용한 비닐자루는 깨끗이 씻어 이듬해는 물론 이웃끼리 돌려가며 써도 좋다고.

◇ 맛있게 오래 먹기 = 요즘 주부들 사이에선 10개를 구입하면 1개를 무료로 준다는 고가의 김치용 냉장고 계가 유행일 만큼 따뜻한 실내에서 시원한 김장김치 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시댁.친정이 단독주택인 경우 '원정김장' 을 한 뒤 그 곳에 보관해두고 조금씩 가져다 먹는 주부들도 많고, 아파트 1층에 사는 가정에선 집 앞 작은 뜰에 김치독을 묻어 두기도 한다. 금방 먹을 김장김치는 피서용 아이스박스에 넣어 베란다 등에 두었다 먹는 것도 한 방법. 주부 윤현주 (39.서울노원구월계동) 씨는 "우선 설탕.조미료를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맛있는 김치를 오래 먹을 수 있다" 고 귀띔한다.

또 냉장고에 곧장 넣어 천천히 숙성시켜 먹는 경우 발효가스로 김치통 뚜껑이 올라올 때마다 뚜껑을 열고 공기를 빼준 다음 김칫국물에 2~3 큰술의 젓갈을 타주라고. 국물은 조금 짜져도 배추는 더 이상 짜지지 않고 끝까지 아삭거린다.

윤씨는 게나 달걀 껍데기를 깨끗이 씻은 후 아주 곱게 빻아 넣어두기도 하는데 이 껍질들은 젖산을 중화시켜 금세 시어지는 것을 막아주면서 김치가 익을 무렵이면 저절로 녹아 없어진다고. 또 주부 문경(32.서울양천구목동)씨는 "시어머니께선 동치미를 담글 때 무 45~50개 분량에 소주를 반 병~1병씩 넣어 주시는데, 그렇게 하면 하얀 불순물이 전혀 뜨지 않는 맑은 국물을 맛볼 수 있다" 고 알려준다.

남부지방에선 동치미 국물에 대나무 잎을 몇 개 띄우거나 유자 몇 쪽을 깨끗이 씻어 넣어 맑고 향기로운 맛을 내기도 한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