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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南틈새 파고드는 北성명진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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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들어 북한이 남쪽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자주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중요한 것만 추려 봐도 '총풍' 사건에 대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두차례 성명서 (10월 12일, 27일 평양방송) 를 냈고, 12일에는 조선기자동맹중앙위가 최근 논란중인 최장집 (崔章集) 교수를 옹호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북한이 남북간 현안에 대해 자신들의 정당한 소신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하고 또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북과는 관계없는 남쪽 내부의 정치적 사안이나 학문과 언론간의 논쟁 자리에까지 끼어들어 어느 편을 드는 식이어서는 남북 어느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정간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먼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 관한 북의 성명을 보자. 이 사건은 북과 무관한 일이 아니니 북쪽 당국으로서 입장을 밝힌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 없었다로 입장정리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북쪽 성명 내용은 다분히 위협적 논조로 일관했다.

"우리의 입이 터질 때는 여든 야든 다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입을 열면 이회창을 비롯한 한나라당 패거리들에게 좋을 것이란 하나도 없다" .여야 가릴 것없이 북쪽이 입을 열면 모두가 다치게 된다는 협박.공갈성 내용을 담고 있다.

사용하는 용어도 '불에 덴 송아지' 니 '송사리' 또는 '망나니 같은' 무엇이니 등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崔교수에 대한 북쪽 성명은 터무니없이 아전인수격이다.

崔교수는 6.25를 남침 아닌 민족해방전쟁으로 보는 지성과 양심을 갖춘 학자로 은근히 추켜세우면서 그를 비판하는 세력은 민족대단결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 로 매도하고 있다.

崔교수는 이 성명에 즉각적인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북쪽 성명서는 자신의 논지를 북에 유리하게 왜곡.변조한 것이고 자신은 한국전쟁을 '북한권력의 오만과 무절제가 빚은 참상' 으로 규정한다고 천명했다.

만약 崔교수가 즉각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북이 비호하는 친북학자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또 총풍사건에 대한 북의 성명대로라면 남쪽 정치인 모두 북에 코가 꿰어 있으니 함부로 까불지 말고 북쪽 말을 잘 들으라는 식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가 없다.

북의 이런 식 성명전은 다원화된 남쪽 여론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남쪽 사회를 분열시키면서 자신들의 적과 동지로 패를 갈라 뭔가 이득을 보려는 낮은 수준의 이간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도 북의 이런 이간에 놀아날 빌미를 제공한 측면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측 당국은 저차원의 이간책으로 남북문제를 풀려해서는 안된다.

남북화해와 관계개선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광명정대한 길을 걸을 때 가능하다.

구시대적 대남선전공세를 이젠 그만둘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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