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10만원권 필요한가]이필상 고려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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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먼저 현재의 소비침체는 고액권발행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제가 붕괴위기에 처하여 2백만에 가까운 실업자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직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빠져있다.

더구나 내집마련할때 꾼 돈이 많아 집집마다 빚갚기에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국민은 쓸래야 쓸 돈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소비침체는 구조개혁을 해서 경제를 살리고 돈을 골고루 돌게 하여 해결할 문제이지 10만원짜리를 발행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탈세와 금융소득의 세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경제위기와 아랑곳없이 고가외제품구입, 유흥업소출입, 해외자산도피 등 부도덕행위를 일삼고 있는 부유층의 불건전한 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

또 정치비자금거래, 공직자매수, 학교교사촌지제공 등 뇌물수수를 자유롭게 하여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심화시킬 수 있다.

더욱이 부유층의 과소비는 물가불안심리를 자극하여 서민들의 고통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10만권 발행은 우리경제를 망친 원인들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 된다.

한편 수표발행비용절감을 위해 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주장은 경제규모와 거래단위가 커지고 경제구조가 복잡다기화됨에 따라 각종 신용카드나 전자결제가 보편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선진각국은 시간이 절약되고 비용이 저렴하며 증빙과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전자결제제도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소액의 경우 이외에는 현금사용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고액권지폐가 발행되면 위조지폐의 사용이 빈번해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비용도 적지 않다.

또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통화정책기능이 크게 저하할 수 있다.

고액권이 많이 사용될수록 많은 자금이 금융기관으로 환류되지 않아 효과적인 통화관리가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10만원권 수표사용문제는 카드나 전자결제제도를 발전시켜 고액권사용 필요성 자체를 해소하는 것이 옳은 해결방향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거래의 불편을 해소하고 수표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2만원권 정도의 지폐발행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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