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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 찾다 숨진 바렌츠 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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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653년 7월 30일, 네덜란드 하멜 일행을 태운 상선 스페르베르 호가 대만을 떠났다. 그들은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도중 태풍을 만났다. 닷새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제주도에 표류한 것은 8월 16일이었다. 조선에 상륙한 ‘최초의 서양인 집단’이었던 하멜 일행은 그 뒤 13년 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일본으로 탈출했다. 이 배의 서기였던 하멜은 조선 땅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보고서 형식으로 집필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하멜 표류기』다.

하멜이 표류한 것은 조선조 효종 때였다. 조정은 하멜 일행이 십수 년간이나 억류되어 있었는데도 어느 나라 사람인 줄 몰라서 남만인(南蠻人)이라고만 부르다가, 그들이 탈출한 뒤 일본 정부에서 보내온 외교 서한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이 네덜란드(阿蘭陀) 사람인 것을 알았다. 네덜란드인이 전 세계를 누비며 말 그대로 ‘세계경영’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하멜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몰랐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네덜란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멜 표류 사건 반세기 전인 1596년 여름, 네덜란드인 선장 빌렘 바렌츠(1550~1597)는 교역로를 찾기 위해 북극해에 진입했다. 아시아에 도달할 최단 항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모험에 나섰다. 그는 북극해에서 빙하에 갇히게 되었다. 선장과 17명의 선원은 동토에 올라 배의 갑판을 뜯어 움막을 짓고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며 겨울을 보냈다. 식량이 떨어져 북극곰과 여우를 사냥해 허기를 달랬다. 괴혈병에 시달리던 선원들은 1597년 6월 13일 작은 배 두 척에 나눠 타고 바다에 나섰지만 1주일 뒤 쇠약해진 바렌츠 선장은 숨을 거뒀다(그림).

50일 뒤 러시아 상선에 구조될 때 생존자는 12명이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감동했다. 위탁받은 화물에는 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옷과 약품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화물에 손을 대지 않고 고스란히 네덜란드로 운반해 고객에게 건네주었다. 목숨 걸고 신용을 지켜 후세에 길이 남을 상도덕의 선례를 남긴 것이다. 그 덕분에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 유럽의 해상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번영의 꽃을 피웠다. 하멜 일행은 무역을 위해 네덜란드를 출발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네시아·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가던 중 제주에 표류했다. 험난한 바닷길을 헤쳐 온 그들에게는 목숨보다 신용을 중요시한 투철한 상인정신이 있었다. 네덜란드 경제 번영의 비결은 ‘신용’이었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